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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문제는 노동자의 생활비용이다

  • 2013.07.22(월) 09:55

이명박 정부의 경제팀의 초대 수장이었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상수지와 환율 주권론'을 유별나게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총론에서 보자면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국가경제 역시 경상흑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환율은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무역이 경제의 핵심 요소가 된 근현대 주요국의 경제사(經濟史)는 환율과 경상수지 변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강만수 장관이 간과한 것은 각론이다. 경상수지에 환율만큼 중요한 인플레이션과 노동비용에 대해 그는 상대적으로 적은 정책적 관심을 기울였다. 통화가치를 아무리 절하해도 노동비용과 인플레이션이 그 이상으로 올라버린다면 경상수지는 악화될 수 밖에 없다. 노동비용과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면 수출가격 경쟁력도 안정적일 것이기 때문에 굳이 통화가치를 절하하지 않고도 대외균형과 경상흑자를 지속할 수 있다.

 

지난주 미국 하원 반기보고에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중국과 일본의 환율정책에 대해 흥미로운 답변을 했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문제가 있고, 일본은 괜찮다는 게 버냉키 의장의 주장이다.

 

"중국은 지난 수년 동안 수출을 늘리기 위해 환율을 균형수준 아래로 관리해 왔다. 이는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으로, 그들이 얻는 게 있으면 우리는 잃는 게 생긴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그들은 환율을 조작하지 않고 있으며, 디플레이션 퇴치를 위해 국내용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만약 일본의 물가가 상승하게 된다면 엔화 절하 효과는 상쇄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정반대다. 중국의 노동비용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반면, 일본의 물가와 노동비용은 여전히 하락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80엔 안팎이던 달러-엔 환율이 100엔으로 올라갈 정도로 엔화가 급격히 절하됐기 때문에 일본의 무역은 이중의 경쟁력을 얻어가고 있다.

 


[(데이터 출처 : OECD) ⓒ글로벌모니터]

 

노동비용과 인플레이션이 대외 경쟁력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는 유로존의 사례가 역설하고 있다.

 

유로존 자체는 대외적으로 균형을 유지해 왔지만, 이는 거의 전적으로 독일 경제의 엄청난 흑자에 의해 나타난 착시일 뿐이다. 그리스와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 등 이른바 주변부(peripheral) 국가들은 막대한 경상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바로 유로존이라는 단일통화 시스템 때문이었다. 안정된 통화를 갖게된 주변부 국가들로 싼 자금이 물 밀듯이 들어왔고, 이 과정에서 노동비용과 인플레이션이 부풀어 오르는 거품이 발생했다. 상대적으로 저열한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노동비용이 급증하면서 이들 국가는 대외 경쟁력을 상실했다. 하지만 유로존 17개 회원국은 어느 누구도 자국의 경제 불균형을 개선하고 싶어도 독자적으로 금리와 환율을 조정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이들 주변부 국가들은 적자를 외채로 더 이상 메우지 못하게 되자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반면, 이들 국가의 경쟁력 저하로 상대적 경쟁력이 높아진 독일은 경상수지 흑자가 급격히 부풀어 올랐다. 심지어 주변부 국가들의 노동비용이 급증하는 동안 독일의 노동비용은 오히려 수년간 하락함으로써 이들간의 경쟁력과 경상수지 격차는 더욱 빠르게 확대돼 버렸다. 단일통화 회원국 간의 불균형이 극적으로 심화돼 버린 것이다.

 

그 이후의 조정과정은 더욱 극적이다. 구제금융을 받은 주변부 국가들은 혹독한 긴축정책과 경제개혁에 나섰다. 소득이 줄어들고 실업이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비용과 물가는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독일의 노동비용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주변부 국가들과의 경쟁력 격차를 줄이는데 일조했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독일의 무역흑자는 총 803억 유로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5%나 늘어났다. 하지만 유로존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한 무역흑자는 9억 유로에 불과했다. 5년전에 비해 3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지난 2008년에만 해도 독일 전체 무역흑자의 35%에 달하던 역내(域內) 흑자는 이제 1.1%로 줄었다. 5년사이 역내 국가들로부터의 수입액은 14% 증가했다. 그 결과 스페인의 경상수지는 결국 흑자로 돌아섰다. 주변국들이 덜 쓰고 더 판 반면, 독일은 더 쓰고 덜 번 결과다. 이른바 '내부 재균형(internal rebalancing)'에 성공해 가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 출처 : OECD) ⓒ글로벌모니터]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의 실정을 통해 봐왔듯이 이 같은 형식의 재균형은 환율조정(평가절하)에 비해 매우 고통스럽다.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의 구조개혁은 쉽게 말하자면 해고를 늘리고 임금을 떨어뜨리는 정책이다. 하지만 독자적 환율정책을 쓰는 나라라고 하더라도 대외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경우가 많다.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남겨 놓은 이른바 '세 번째 화살'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일본이 과연 세 번째 화살을 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만약에 그들이 기어이 화살을 쏜다면, 설사 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의 저임금, 저물가, 고환율이 이어진다면 우리에게는 엄청난 위협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원화를 절하시키고, 해고를 더욱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더 많이 쓸 수 있도록 해 임금을 떨어뜨리는 정책은 하수(下手) 중의 하수다. 엄청난 정치·사회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정석(正石)은 노동자들의 생활비용(cost of living)을 떨어뜨리는 정책일 것이다. 독과점을 해체하고 경쟁을 촉진시키는 구조적인 물가안정 정책이 긴요하다. 무엇보다도, 주거비와 교육비를 극적으로 낮추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대외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용을 늘릴 것이고, 고사상태에 빠진 내수를 살리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생활비용을 나라가 대신 부담하는 방법을 동원한다면 역시 '하수'라는 소리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난해한 과제를 푸는 것이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할 일이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주는 세금이 아깝지 않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www.globalmoni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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