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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 강세의 큰 흐름에 대비하자

  • 2013.07.08(월) 10:58

1. "외화자산 운용수익에도 불구하고 6월중 만기도래한 외평채 상환 및 유로화, 호주달러화 등의 약세로 이들 통화표시자산의 미 달러화 환산액이 감소한 데 주로 기인" (2013.7.3)

 

지난 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액 운용현황 보도자료에 낯선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호주달러".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을 호주달러에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 통화 다변화' 노력이 올 들어 두드러지게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달러화 초강세가 이어지면서 여타 통화로 분산해 운용하고 있는 자산들에서 환손실이 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3264억 달러로 지난 1월말에 비해 24억7000만 달러나 줄어들었다. 매달 꾸준한 운용수익이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잔액이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당국이 달러화를 시장에 매도한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보유액 감소추세는 간단치가 않다.



 

한은의 '非달러화 분산투자' 이슈가 공식적으로 부상한 때는 지난 2005년 2월이었다. 당시 한은은 국회 업무보고용 자료에서 "외환보유액 투자대상을 다변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날 밤 뉴욕 외환시장에서는 달러화가 1.4%나 폭락하는 쇼크가 발생했다. 한국은행을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달러화를 팔고 유로나 파운드 등으로 통화를 분산시키는 분위기가 공식화한 탓이다.

 

당시 달러인덱스는 82.5 수준. 2002년초의 고점(120.6)에 비해 무려 31%나 절하된 상태였다. 미국의 超저금리 정책과 이로 인한 弱달러 현상이 3년 넘게 이어지자 한은이 견디다 못해 다른 통화로 분산투자를 꾀했던 것이다.

 

2. 그리고 8년반이 지났다. 이제는 미국발 금리 급등세에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주 영국과 유로존의 중앙은행들은 '금리인상이 늦어질 것'이라는 완화적 정책기조를 발표해 자국내 금리를 하향 안정시키려 했으나, 미국의 고용지표 서프라이즈 탓에 효과는 하루도 채 가지 못했다.

 

미국 금리와 함께 달러화 가치도 솟아 오르고 있다. 지난 금요일 뉴욕시장에서 달러인덱스는 84.53으로까지 급등했다. 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달러화 비중을 줄이겠다고 보고한 지난 2005년 2월 당시에 비해서도 2.4%나 높은 수준이다.


미국발 장기 저금리 기조에 마침표가 찍혔듯이, 달러화의 장기간 약세행진에도 종언이 고해진 듯한 모습이다. 돌이켜보면, 장기간의 약(弱)달러 추세는 지난 2008년 3월에 1차 마무리됐다. 6년여 동안 달러화는 무려 40.8% 절하됐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중순 연방준비제도의 제3차 양적완화 시점을 바닥으로 추세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미국이 기한 없는 초강력 화폐발행에 돌입한 것이 외환시장에서는 역설적으로 달러강세로 표출됐다. 미국 경제가 돈의 힘에 의해 본격적으로 회복세를 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다. 이 같은 기대는 현실화되고 있고, 연준은 QE 축소/종료일정을 공표함으로써 달러강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3. 달러화 강세는 미국 초국적 기업들의 순이익을 삭감하는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주체들의 대외 실질 구매력이 늘어나는 효과도 작지 않다. 미국이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가 아님을 감안한다면, 미국 정부로서는 강한 달러를 선호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특히 미국의 경상수지 추세는 강(强)달러 현상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 2006년 하반기 이후 미국이 리세션과 금융위기를 차례로 겪으면서 경상수지가 대폭 개선됐기 때문에 이제는 달러가 좀 강해지더라도 대외균형에 문제를 일으킬 위험은 대폭 줄어들었다. 즉, 미국경제는 이제 달러강세를 통해 자국 경제주체들의 후생을 증대시키는 정책을 사용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달러화 강세는 단지 미국 스스로에 의해서만 추동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요국들이 자국 금리 안정을 위해 완화정책을 쓰면 쓸 수록 달러화는 더 강해진다. 엔화의 가파른 절하를 야기하고 있는 일본의 통화정책이 달러를 강하게 밀어 올리는 대표적인 외부 동력이다. 최근에는 호주중앙은행이 노골적으로 자국 통화가치 절하를 유도하고 있으며, 지난주에는 영국과 유로존 중앙은행이 여기에 가세했다.


 


 


4. 달러화의 추세적 강세 움직임은 우리 경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은행이 달러화 비중을 되높이지 않는다면 보유외환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계속 커질 수 있다. 달러화 부채가 많은 기업의 상환부담도 날로 확대될 수 있다. 수입물가가 높아지면서 국민들의 실질 소비여력도 줄어들 수 있다.

 

반면 수출기업들의 이익은 커질 수 있으며, 경상수지 흑자폭은 더욱 확대될 수 있고, 외화자산이 많은 경제주체들은 작지 않은 환산이익을 누릴 수 있다.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이득이 큰 반면, 내부적으로는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는 만큼 세심한 정책대응이 요구될 것이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된 지난 1970년대 이후를 돌이켜 보면, 달러화는 크게 두 차례에 걸쳐서 장기간의 강세 추세를 보였었다. 1980년대초와 1990년대 중후반의 달러화 강세 사이클은 모두 미국의 통화긴축에 의해 촉발됐다. 80년대의 금리인상과 달러강세는 남미 국가들의 연쇄부도로, 90년대 중후반의 경우는 아시아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는 달러화 강세에 역행해 '강한 원화'를 고집한 후과(後果)라고도 볼 수 있다.

 

달러화 강세는 전통적으로 원자재 가격을 하락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해 왔다. 원자재 수출국으로서는 치명적이겠지만 - 호주가 최근 통화절하 유도에 나선 배경으로 보인다 – 우리 같은 자원 수입국은 물가충격을 완충할 수 있는 요소로 반길 만하다.

 

달러화 강세기에 글로벌 '자본'은 미국으로 집중된다. 반면 글로벌 '소득'은 우리 같은 공업생산 수출국으로 모이게 된다. 우리로서는 달러 약세기에 생긴 유동성 거품을 차분히 해소해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달러화 가치의 추세적 변화 움직임은 이처럼 우리의 생산 및 투자, 소비활동에 심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금이 그야말로 세번째 강(强)달러 사이클의 진입을 의미하는 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그 흐름을 탈 준비를 미리 잘 해둔다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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