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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현대차 노조원의 한숨

  • 2013.09.10(화) 14:47

"졌어. 진거야."

파업에 동참했던 한 현대차 노조원은 올해 임단협 결과를 이렇게 평가했다. 한마디로 노조의 완패라고 했다. 얻은 것은 적고 잃은 것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했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을 파업으로 보낸 그의 목소리에는 허탈함이 묻어 있었다.

현대차 임단협이 끝났다. 늘 있었던 전면파업도, 폭력사태도 없었다. 과거에 비해 비교적 조용히 마무리됐다.

현대차는 매년 여름 시한폭탄을 안고 산다. 임단협때문이다. 노조는 언제나 파업 카드를 빼든다. 노조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카드다. '협상→결렬→파업→합의'는 지난 22년간 현대차 노조가 지켜왔던 원칙이다.

올해도 현대차 노조는 이 원칙을 고수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8월부터 이달까지 총 10차례 부분 파업을 실시했다.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 대수는 5만191대, 금액으로는 총 1조225억원에 달한다.

외형상 현대차 노조는 지난 22년동안 이어온 파업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그들이 원했던 대로 파업은 사측을 압박하는 수단이 됐다. 그 결과 임단협도 타결됐다. 하지만 그는 왜 허탈해하는 것일까.

올해 현대차 노조의 파업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부분들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것은 지난달 20일. 추석 연휴를 불과 한달 여 앞둔 상황이었다.

추석 연휴는 노조에게 매우 중요하다. 추석 연휴에는 노조원들의 지갑이 두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단협이 타결돼야한다. 임단협 결과에 따라 임금과 성과급의 기준이 정해져서다.

여기에 차기 지부장 선거 일정도 잡혀있었다. 임단협 타결 불발시 노조 지도부가 감내해야 할 비난의 무게가 엄청나다. 노조 지도부가 겉으로는 파업을 진행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타결을 서두른 이유다.

노조 내부에서도 분열이 많았다. 차기 지부장 선거를 앞두고 각 계파간 머리싸움이 치열했다. 겉으로는 파업을 지지하고 동참했지만 계파별 계산은 달랐다. 차기 집권을 노리는 계파에서는 파업 장기화를 기대했다. 그 반사 이익을 지부장 선거에서 누릴 수 있어서다.

현 지도부는 여러모로 난관에 봉착했다. 시간은 없고 타 계파의 견제는 심했다. 함께 파업은 하지만 속내는 다른 '동상이몽' 파업이 지속됐다. 노조 지도부가 전면파업에 돌입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노조와 달리 사측의 전략은 착착 맞아떨어졌다. 노조가 제시했던 상식 밖의 요구안은 여론에 난타 당했다. 또 해외 공장 증설 카드도 슬며시 내밀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노조는 코너에 몰렸다.

노조는 당초 자신들이 요구했던 안의 5분의 1수준에서 올해 임단협안에 합의했다. 노조원들은 실망했다. 노조원들의 잠정 합의안 찬성률을 보면 이런 실망감이 잘 드러난다.

잠정 합의안에 대한 노조원들의 찬성률은 55.13%다. 파업 돌입 여부를 묻는 찬반 투표의 찬성률은 80.40%였다. 80%가 찬성해 벌인 파업의 결과에 대해 55%만이 찬성했다는 것은 그만큼 노조원들의 실망이 컸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는 "이번 임단협은 사측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면서 이도저도 아닌 채 파업만 일삼았다는 비난만 받게 됐다"며 "더 큰 걱정은 앞으로 사측과의 각종 협상에서 이런 패턴이 유지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올해 현대차 임단협은 노조에게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론을 무시한 상식 밖의 요구와 무분별한 파업은 결국 '제살 깎아먹기' 라는 점을 노조도 인식했으리라 본다.

조만간 차기 집행부 선거가 있다. 차기 집행부는 부디 22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습(因習)의 틀을 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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