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두산의 묘수(妙手), 그 끝은

  • 2013.11.27(수) 10:23

최근 두산건설이 10대1 감자를 결정했다. 감자를 통해 자본금을 줄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감자차익을 통해 올초 액면가 이하로 유상증자를 실시하면서 발생한 주식할인발행차금을 상계할 계획이다.

 

감자차익의 규모가 주식할인발행차금의 규모보다 큰 만큼 이 작업을 거치고 나면 두산건설의 자본총계는 그대로지만 회계적으로 배당가능이익이 발생하게 된다. 두산건설은 이후 40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 재무구조를 개선할 예정이다. 두산그룹은 두산건설을 살리겠다는 의지로 해석해 달라는 입장이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그동안 두산은 다양한 자금조달 기법을 이용해 위기를 넘겨왔다.

 

지난 2011년 5월에도 두산중공업은 보유하고 있던 두산건설 지분을 기초로 2200억원의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두산중공업은 이 자금을 다시 두산건설 유상증자에 투입했다. 두산중공업이 가지고 있는 잉여지분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다시 투자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한 것이다.

 

2009년 6월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기법을 선보였다. 밥캣 인수이후 유동성 위기설이 돌자 두산은 두산DST(방산업체), KAI(한국항공우주산업), SRS코리아(외식업체), 삼화왕관(병뚜껑업체)의 지분을 매각해 7800억원을 조달한다고 발표했다.

 

두산은 우선 이들 회사의 지분을 새로 만들어지는 2개의 특수목적회사(SPC)에 넘기기로 했다. 특이한 것은 그중 하나의 SPC(DIP홀딩스)에 두산이 2800억원을 출자했다는 점이다. 두산 계열사의 지분을 매입할 SPC를 직접 만든 셈이다. 또 다른 하나의 SPC(오딘홀딩스)는 미래에셋PEF 등 사모펀드들이 2700억원을 출자해 만들었다.

 

두산이 지분을 매각한 4개 계열사는 두산이 출자한 DIP홀딩스가 51%, 또 다른 SPC인 오딘홀딩스가 49%를 보유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주)두산이 SRS코리아 주식 100주와 삼화왕관 주식 1000주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자. (주)두산은 SRS코리아 주식 100주 중 51주는 DIP에, 49주는 오딘에 넘겼다는 말이다. 삼화왕관 주식의 경우 510주와 490주로 나눠 각각 DIP와 오딘에 넘겼다. 구조조정 대상 4개사 지분을 각각 이런 방식으로 처리했다.

 

결국 두산의 계열사들은 두개의 SPC가 공동으로 경영하는 형태로 변했고, 이 과정에서 두산은 자금을 조달했다. 당장의 경영권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금융기법을 활용해 유동성을 확보한 셈이다.

 

얼마 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두산인프라코어가 5억 달러의 영구채 발행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영구채의 자본 인정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결국 자본으로 인정 받았다. 때문에 자본시장을 이용한 두산의 자본조달기법이 현란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오랜기간 다양한 금융기법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수익을 만들어 내야 하는 기업 본연의 역할이 약하다는 의미로도 연결된다.

 

최근 많은 인기를 끌었던 웹툰 '미생'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온다.

 

"국면 전환을 꾀하는 그 한 수. 바둑에서는 묘수(妙手) 또는 꼼수라 부른다. 따라서 묘수가 빛나는 바둑이란 그동안 불리한 바둑이었다는 방증이다."

 

두산건설의 이번 감자 건과 앞에서 열거한 두산그룹의 금융기법은 묘수(꼼수까지는 아니다)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이번 결정과 우선주 발행을 통해 두산건설을 둘러싼 불안한 시각은 일단 걷혀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의 불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이를 탓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두산건설은 물론 두산그룹 전체적으로 계속 묘수를 둬야만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묘수만으로는 바둑을 이길 수 없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