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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주인인가, 돈이 주인인가?

  • 2014.04.15(화) 16:23

자본주의, 자유주의 주창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자본주의의 부작용은  `자본(資本)`이란 말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배금주의일 것이다. 인격 없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돈을 위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회는 타락하기 쉽다. 황금을 만능으로 여기는 가치관이 횡행하게 되면, 남의 불행을 틈타 나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가 기승을 부리게 되고 그에 따른 사회병리현상의 부작용은 결코 적지 않다.

몇년 전 강남의 유명백화점에서 참기름 2병을 `슬쩍`한, 의지할 데 없는 노인이 무려 2년의 실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우울했던 적이 있다. 만약 그가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었다면 그런 참극을 피해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수차례 전과가 있어서 실형을 선고했다"는 담당 법관의 해명인지 변명인지 모를 부연 설명에, 실망감을 넘어 분노마저 느꼈다.

한 택시운전사는 부주의로 낸 사고로 7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는데 벌금 낼 형편이 되지 않자, 하루에 5만원씩 벌금을 감해주는 감방 노역 140일을 자청하였다고 한다. 하루에 벌금 5만원을 감해주고 세끼 식사 3000원씩 9000원과 24시 사우나 입장료를 포함하면 강제노역이 그럭저럭 6만~7만 원 정도의 벌이는 되는 셈이라고 한다. 가슴이 미어지는 이야기다.

얼마 전에는 하루 감방노역으로 5만원이 아니라 5억원의 벌금을 감해주는 법의 심판이 있었다. 5억원이라는 돈은 하루 5만원씩 주 5일 근무로 무려 41년 6개월 이상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다. 41년 동안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일생 동안 열심히 일해도 5억원을 채 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비일비재하다. 그 판결은 그야말로  `미다스의 황금 방망이`가 되는 셈이다. `미다스의 황금`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었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주인이 사람인지 돈인지 모르는 헷갈리는 상황이 우리 사회에서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 는 흘러간 유행가를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다. 누구는 너그러운 법의 관용을 받거나 특별사면을 받아 죄가 흐지부지 되고, 다른 누구는 냉엄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회를 어떻게 정의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 헌법에서 강조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은 특정인이 아닌 모든 국민에게 해당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얻기 위하여 돈을 버는  것인데, 물신주의(物神主義) 사회에서는 돈이 수단이 아니라 생의 궁극적 목표가 되는 웃지 못 할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돈을 신격화하다보니 인간이 돈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돈의 노예가 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진다.

돈을 벌수록 더 벌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다 보면, 정신세계는 더 황폐해질 수 있다. 어쩌다 큰 돈을 벌게 되면 그 이전보다 더 각박해지거나, 공연히 거들먹거려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를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돈이 여유로운 생활의 방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성을 상실시키고 그의 삶을 망가뜨리는 불행의 씨앗으로 변한 셈이다.

돈을 천당이나 극락으로 짊어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물신주의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 것은 급속한 산업화 그리고 패자부활이 불가능해지는 과당 경쟁사회의 부작용이기도 하지만, 수명이 길어지면서 피할 수 없는 `미래의 불안`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판단된다.

결국 몇 살까지 살지 모르기에, 노후불안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돈에 집착하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국민소득소득 수준에 걸맞게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일이 이 사회를 짓누르는 배금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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