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골든 타임`과 `골든 에이지`

  • 2014.12.29(월) 16:36

`우울한 경제지표들, 골든타임은 남아있다` `기업인 가석방·사면도 골든 타임이 있다` `구제역 확산 방지 골든타임이 중요하다` `박 대통령에게 남은 마지막 골든 타임`. 2014년이 저물어가는 즈음, 신문 사설에 등장한 제목들이다. 하나같이 `골든타임`을 이야기 한다. 다사다난했던 올해 한 해, 가장 흔하게 들었던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골든타임이다. 원래 `골든`과 `타임` 사이를 떼어야 올바른 표기지만 붙여쓰기도 흔해졌다.           

용어 검색을 해보니 골든타임은 여러 방면에서 사용한다. 우선 미디어분야에서 골든 타임(golden time)은 프라임 타임(prime time)의 다른 명칭이다. 프라임(prime)은 가장 중요하다는 뜻으로 프라임 타임은 시청률이나 청취율이 가장 높아 광고비도 가장 비싼 방송시간대를 가리킨다. 드라이브 타임(drive time)이나 골든 아워(golden hours), 골든 타임(golden time), 피크 타임(peak time) 등으로도 불린다.

생명을 다루는 분야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위급하고 중요한 상황을 말한다. 사고나 사건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초반 금쪽같은 시간을 지칭한다. 응급처치법에서 심폐소생술은 상황 발생 후 최소 5분에서 최대 10분 내에 시행돼야 한다. 항공사의 경우 운명의 90초 룰이 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90초 내에 승객들을 기내에서 탈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의 골든타임은 이처럼 긴급한 상황을 묘사하기위해 차용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케이스와 세월호 참사는 골든타임 상황에서 가장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5월 초순 저녁 늦게 심장마비가 왔지만 비서진은 주치의와 의료 차트가 있는 삼성병원이 아니라 자택과 가까운 순천향대학병원으로 긴급 이송했다. 심장마비의 골든타임인 5분~10분 이내에 이 회장은 그곳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았고 이후 삼성병원으로 이송, 본격적인 시술을 받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4월 중순 일어난 세월호 사고도 초기 대응이 신속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퇴선 조치없이 달아난 선원과 해경의 부실, 늑장 구조 탓에 304명의 희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특히 발생 초기인 오전 9시 이전에 사고 소식을 접한 해경은 한시간이 넘어서야 심각성을 인식했다. 골든타임을 고스란히 흘려보낸 것이다. 이른바 `땅콩 회항`사건이 일어났을때도 대한항공은 여론을 무시하고 무사안일하게 대처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쳤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사건 사고의 현장에서 긴박감을 나타내는 골든타임은 정치와 정책 분야로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7월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경제 회복 골든타임론`을 펴자, 박근혜 대통령도 경제 골든타임을 강조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헌에도 골든타임이 있다"고 맞섰다. 이후 각종 정책뒤에 골든타임이 붙었고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이며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했다.

신선했던 `골든타임`이 진부해지고, 긴박했던 `골든타임`이 공허해진다.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골든타임을 남용한 결과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보다 큰 그림`에 대한 공감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 자신의 이해를 생각하면서 우선 순위를 정하고 골든타임이라고 얘기하지만 정작 다른 사람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비전의 공유가 없어서 인데, 비전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은 지도자가 맡는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 `골든 에이지(Elizabeth: The Golden Age)`가 모델로 삼은 엘리자베스 1세는 인상적이다.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재위 1558~1603)가 즉위했던 당시 사회의 갈등은 오늘날의 한국보다 더 심했다. 스페인 등과의 전운이 드리워진 가운데 국내는 종교로 나눠졌다. 전왕인 피의 메리는 골수 가톨릭 신자로 신교도를 박해했고, 또 그 전의 왕 에드워드는 개신교인으로 가톨릭 신자들은 마음 붙일 데가 없었다.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는 명언으로도 유명한 엘리자베스 1세는 반대 세력에 대해 "나의 백성인데  종교가 다르다고 그들을 죽일수 없다"면서 양쪽의 반발을 무마시키고 나라를 하나로 통합했다. 그녀는 국정을 맡길 신하들을 선택할 때 판단기준에서 종교를 제외했고, 단지 충성심과 지혜로움에 근거하여 인물을 등용함으로써 현신을 거느릴 수 있었다. 영문학의 대명사인 셰익스피어, 그레셤 법칙을 세운 토마스 그레셤 등 숱한 영웅들도 배출해냈다.

우리 주변에서 골든타임을 외치는 소리가 많은 것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현재의 중요성을 알고 `헛되이` 보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서로가 열심히 사느라고 바쁘다면 누가 남의 얘기에 귀 기울일 수 있을까?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되는 걸까? 격동의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어떻게 황금시대(골든 에이지)를 열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