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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빠져나가는 한국의 청춘들

  • 2015.03.27(금) 09:19

이번 주초 아시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뉴스는 싱가포르 총리를 지낸 리콴유의 서거와 국내외를 넘나들며 펼쳐졌던 한류 톱스타 커플의 데이트 장면이었다. 리콴유 전 총리는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경제 성장을 주도한 거물 가운데 하나로 그의 위대한 업적과 검소한  삶은 사람들의 귀감이 됐으며 아시아인들은 아쉬움속에 그를 떠나보냈다. 비슷한 시각 `한류스타` 이민호와 `K팝스타` 수지가 사랑에 빠졌다는 서울발 뉴스에 한류팬들은 동요했다. `아시아의 눈`을 피하기 위해 둘은 9000km의 서울과 파리, 350km의 런던과 파리를 넘나들며 데이트를 해야했다.

젊은 남녀의 만남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환영할 일이다. 뭇 사람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을 정도의 `훌륭한 자산`을 가진 청춘이 매력 만점인  이성과 사귀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스타들이 사랑이라는 바이러스를 우리 사회에 퍼뜨리는 것도 반길 일이다. 특히 저출산으로 암담해진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호재`다.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프로포즈를 누가했는지, 얼마나 지속할 것인지 등도 궁금하지만 경제를 취재해온 기자로서 눈길이 머문 곳은 정작 다른 곳이었다. 혹시 한국은 청춘들이 데이트 하기에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곳이 아닐까?

기사에서 만남의 장소로 알려진 유명 호텔의 사용료가 비싸서만은 아니다. 호텔 이용료가 하루 50만원에서 최대 1백만원을 넘는다고 하고 그곳까지 가기위한 항공료 등도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 톱스타에게 그 정도의 금액은 사실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앞서 눈길이 갔다고 했던 `비용`은 금전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데이트를 못하고 외부로 나가야만 했던 환경과 분위기까지 포함해서다. 가는 곳마다 피할 수 없는 파파라치나 평범하게 봐주지 않는 부담스러운 `외부의 시선` 등도 될 수 있겠고. 아무튼 그들은 `데이트 인프라`가 부실한 한국을 빠져나갔다.

한 젊은 커플의 만남 장소가 `지나치게` 신경쓰이는 것은 우리 경제가 맞닥뜨린 환경과도 많은 부분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해 온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9년째 2만 달러에서 정체돼 있고 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의 증가세도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경제 활동을 위한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한국은 `잃어버린 20년`으로 대변되는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창의력 발휘를 저해하는 규제를 허물고, 시대 흐름에 맞지 않은 제도를 개선하고, 기업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야 할 때다.

한국을 빠져나가는 청춘들은 데이트를 즐기기 위한 톱스타들 뿐 아니다. 돈을 쓰고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일거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들은 자의반 타의반 외국으로 몰리는 신세다.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니 외국에서 대안을 구한다. 안타깝게도 정치 지도자들이 앞장서 해외 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의 일자리는 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에 많이 있다"며 "거기에는 (일자리가) 많이 있으니까 오히려 (청년일자리) 미스매치는 거기서 해결을 해야 되지 않냐"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는 해외청년진출을 총괄하는 TF팀이라도 꾸릴 모양새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고심을 읽을 수 있지만 좀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려깊지 못한 해외 진출은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다 아는 것처럼 15세기 향료를 얻고 금을 구하기 새로운 인도항로를 찾아 나섰던 스페인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부귀 영화`를 누린다. 하지만 이내 쇠퇴하기 시작한다. 중세부터 유럽을 이끌던 강국이었으나 서서히 변방으로 물러난다. 해외에서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그 돈이 생산적인 부분으로 흘러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발전할수 있는 경제기반을  구축하지 못하고 오히려 생산을 담당했던 제조기술자 계층을 밖으로 추방했다. 우리의 경우 청년실업자들이 해외로 나간다면 실업률을 낮출 수 있지만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인프라`가 훼손된다는 점도 고민해야 한다.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는 서울 정도 크기의 보잘 것 없는 도시국가였다. 창조적 혁신가 리콴유는 1인당 국민소득 400달러에 불과했던 가난한 어촌을 작년기준 5만6000달러인 일류 도시국가(8위)로 만들었다. 싱가포르는 세계적 금융·물류 중심지가 됐다. 장기독재나 후진적 정치체제 등 공적에 대한 논란도 있지만 2015년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보면, 나라를 생각하고 미래를 보는 리콴유의 열정과 안목이 그립다. 역사속으로 떠나는 리콴유와는 쿨하게 작별할 수 있지만 한국을 떠나야하는 청춘들과의 작별은 무겁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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