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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 한 사발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

  • 2015.01.30(금) 08:10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토마토가 빨갛게 익을 무렵이면 의사 얼굴은 파랗게 변한다”는 이탈리아 속담이 있다. 토마토 많이 먹으면 의사도 필요 없을 정도로 건강에 좋다는 말이다. 그러니 토마토 수확철이 되면 의사는 다가올 불황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다. 동양에도 비슷한 속설이 있다. “늦가을 시장에 무가 나올 무렵이면 의원이 문 닫는다”

 

겨울 무가 그만큼 좋다는 것이다. 옛날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였지만 명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도 무는 몸에 가장 이로운 채소라고 했으니 허튼 소리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겨울 저장음식으로 무를 먹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우리의 동치미 역시 대표적 겨울 음식이다. 물기 많은 무를 골라 껍질을 그대로 둔 채 깨끗하게 씻어 소금과 함께 항아리에 넣어 두면 무에 소금이 배면서 무의 수용성 성분이 빠져 나와 청량음료처럼 톡 쏘는 맛을 낸다.

 

동치미는 문자 그대로 겨울에 먹는 김치라는 뜻이다. 순수 우리말을 한자로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한자에서 비롯된 우리말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겨울 동(冬)에 김치를 나타내는 침(沈)자를 써서 동침(冬沈)으로 표기했다가 동치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겨울이 되면 장독에서 동치미를 꺼내 와 뜨거운 온돌방에 앉아서 살얼음이 동동 떠서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동치미를 반찬으로 먹거나 아니면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를 넣어 냉면으로 말아 먹었다. 요즘은 냉면을 주로 여름철에 먹지만 예전 냉면은 겨울에 먹는 음식이었다. 특히 이북에서는 겨울철 차가운 동치미 국물에 성질이 찬 메밀국수를 말아 먹으며 겨울 별식으로 삼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추워 죽을 지경인 겨울철에 하필이면 왜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먹었던 것일까?

 

한의학적으로 따지면 상당한 이유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늦가을에 무가 건강에 좋은데 무로 만든 동치미는 몸속의 열을 분산시키고 소화를 돕기 때문이다. 바깥 날씨가 무더운 여름에는 인체의 열이 신체 표면의 피부로 모아져 몸속은 상대적으로 차가워지는데 반해 겨울에는 체열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복부 깊숙한 곳으로 열이 몰린다. 차가운 동치미가 추운 겨울에 어울리는 것도 한 겨울에는 체열이 뱃속 깊은 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위장의 활동이 지장을 받는데 찬 동치미가 들어가 뱃속의 열을 흐트러뜨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국 의학서인 「황제내경」에 인체의 기질은 계절의 영향을 받아 변화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봄에는 기운이 상승하고(春升), 여름에는 양기가 떠돌아다니며(夏浮), 가을에는 기운이 내려갔다(秋降)가 겨울에는 가라앉는다(冬沈)고 한다. 사계절 기운의 부침이 인체의 생리에 변화를 주기 때문에 병의 치료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치미가 열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거창하게 계절의 변화에 따른 인체 기질의 변화까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동치미는 그 자체가 소화제라고 할 수 있다. 무에는 디아스타제라는 효소가 있는데 소금에 절이면 동치미 국물에 녹아 나와 소화에 도움을 준다. 게다가 시원한 탄산 맛과 함께 무기질, 비타민, 유기산 등이 들어 있어 천연이온 건강음료 역할까지 했으니 우리나라 겨울을 대표하는 김치가 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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