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는 물가수준에 대한 해석이 시장과 중앙은행 사이에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금통위에서는 2015년 1월 물가가 0.8% 수준으로 낮아지자 만약 원유가하락(물가기여율 △1.23%)이 없었다면, 물가가 2% 이상 상승하였을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반대로 시장에서는 2월 물가가 0.52%로 더 낮아지자 만약 담뱃값인상(물가기여율 0.6%)이 없었다면 물가가 마이너스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며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긴장하고 있다.
물가에 대한 시각의 바탕을 보면, 금통위는 물가상승 우려가 있으니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최소한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시장에서는 경기침체 상황이 예사롭지 않으니 뒤늦게라도 (기준)금리를 내려 미리 대비하자는 자세다.
조금만 생각해보자. 원유값 하락은 세계 경기 침체로 말미암아 시장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담뱃값 인상은 금연을 유도하고 세수부족을 메우려는 인위적 현상이다.
물가동향과 그 원인을 직시하려면, 공공요금 같은 정책물가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인이 참가하는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정해지는 시장물가를 관찰해야 한다. 담뱃값 인상이 물가상승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원자재이면서도 소비재인 석유값 하락이 불황의 징후를 예고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원유가 하락은 시장의 힘에 의한 것이지 아라비아 왕자나 마법사 공주가 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앙은행과 시장은 항시 긴밀한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데, 어찌하여 이 같은 헷갈리는 일이 벌어질까.
물가와 관련하여 간과하기 쉬운 오류는 물가안정은 인플레이션 억제만 아니라 디플레이션 예방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경제순환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악령보다는 디플레이션 소용돌이(deflation spiral)가 경제를 더 망가트린다. 물가가 지나치게 상승하면 자산소득자가 아닌 일반 근로소득자들을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물가하락은 투자와 생산을 위축시키고 소비와 저축 활동을 마비시켜 사람들의 삶을 질곡에 빠트린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리던 1970년 후반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금융정책의 목표를 오로지 인플레이션 억제에 두었다. 당시 몇몇 나라는 제로인플레이션(zero inflation) 정책을 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 세계로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가는 오늘날에는 상당수 중앙은행들이 오히려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가 3±0.5%임을 감안한다면, 한국경제도 이미 오래전에 사실상 디플레이션 상황에 접근하였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과거 금본위제도 아래 벌어졌던 디플레이션과도 다르다. 오늘날 디플레이션은 세계적 공급과잉과 함께 빈부격차로 말미암은 수요 부족에 따른 `복합적` 산물이어서 해결하기가 쉽지않다. 각국이 돈을 풀어 소비와 생산을 부추기려고 하고 있으나 그 효과는 미미하다. 경제력집중으로 돈이 한곳으로 몰리고 있어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돈을 돌게 하려는 특단의 대책으로 마이너스 기준금리까지 등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 속담에 "행차 뒤에 나팔 분다"고 하였다. 원님 비위 맞추려고 나팔을 부는데, 원님이 떠난 뒤에 부는 나팔은 아무 소용없다는 뜻이다. `불어터진 국수`라도 먹으면 허기는 메울 수는 있지만, 때를 놓친 금융정책은 비용은 몇 배로 드는데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IMF 사태, 부동산투기 사태, 오늘날의 빈부격차 모두 다 정책 오류 내지 실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불황의 조짐이 있는데도 선제 대응 없이 머뭇거리다가 디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 유동성을 웬만큼 퍼부어도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뒤늦게 장마철 소나기처럼 유동성을 풀다가, 언젠가 그 많이 풀린 돈이 돌기 시작하면 또 다른 재앙이 닥친다. 디플레이션이 깊어지면 그 뒤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닥치기 쉬운데, 그 또한 무섭다. 몇몇 선진 경제권에서 미리부터 `헬리콥터`로 돈을 뿌린 까닭이 무엇인가? 줄다리기를 하다 줄이 끊어지면 승자도 패자도 모두 넘어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