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상황을 적정하게 반영하는 통화량과 금리. 국민경제가 원활하게 순환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화폐경제 사회에서 실물부문이 아무리 활발한 성과를 올려도 화폐가치가 흔들리면 국민경제는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글로벌 체제에서 경쟁국과의 (실질)금리 차이가 벌어지면 핫머니 유·출입 같은 부작용을 유발시켜 금융부문 뿐만 아니라 실물부문까지 교란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2013년 5월 2.50%로 결정된 후 장장 14개월 동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요즘같이 국내외 경제 환경 변화가 무쌍한 상황에서 이토록 장시간 기준금리가 동결되고 있는 까닭을 시장은 이해하지 못한다.
2014년 6월 현재, 우리나라와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의 기준금리는 0.01%. 미국은 0.05%, 유로는 0.15%로 제로금리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무려 2.50%에 이르고 있다. 각국의 성장률, 물가 같은 거시지표를 비교해 볼 때 이런 현상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 지불불능 위험을 나타내는 국제금융시장 CDS 프리미엄이 우리나라가 상대국에 비해 높은 것도 아니다.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경제 상황까지도 반영해야 하는 금리의 높고 낮음을 단정적으로 정의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금융완화에서 금융긴축으로, 아니면 그 반대로 통화정책 기조를 선회하는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깊이 고뇌하고 결단해야 한다. 이래도 어렵고 저래도 어려우니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다며 대강 넘어가게 되면 경제적 불확실성은 커지게 된다.
게다가 통화정책, 금리정책의 변화는 집단 내지 계층 간에 빛과 그림자를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 이래저래 커다란 부채를 짊어진 중소기업이나 가계는 높은 금리를 감당하기 어려워 쩔쩔매지만, 현금성 자산을 많이 쌓아둔 금리생활자와 대기업 입장에서는 낮은 금리가 성에 차지 않는다. 수요부진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가 어두운 상황에서도 재계 인사들 중에는 엉뚱하게 물가타령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면 서민가계가 높은 금리를 부담하다 보면 여유가 없어지고, 소비를 줄여야 하니 결국 상품이 팔리지 않아 기업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게 된다.
전문가들조차 자주 혼동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중앙은행이 목표로 삼는 물가안정은 물가상승만이 아니라 물가하락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의 물가안정목표를 보더라도 2013~2015년 소비자물가상승률(전년 동기대비) 기준 2.5~3.5%로 설정되어 있다. 물가가 안정목표 이하로 하향될 경우에 대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근원물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범위 아래서 형성되고 있는 모습이 엿보인다.
물가가 상승하기보다는 하락할 경우,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 인플레이션은 경제사회를 타락하게 하지만 디플레이션은 경제활동을 마비시킨다. 사실 20세기 후반부를 제외한다면 인류의 역사에서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이 경제사회를 움츠리게 하였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중앙은행 총재는 때로는 1970년대 말 폴 볼커(P. Volcker)처럼 인플레이션 파이터가 되어야 하지만, 때로는 미국경제를 대공황에서 탈출시킨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21세기 버냉키 같은 디플레이션 파이터가 되어야 한다. (시중에서 사용하는 디프레이션 투사 fighter보다는 디플레이션 구제자 reliever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덧붙여 말하면, 물가안정은 경제안정을 위한 중간목표이지 국민경제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의 기준이 무엇인지 시장에 설명하지 않는다. 기준금리의 기준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대를 벗어난 높거나 낮은 기준금리는 시장의 예측능력을 떨어트리기 마련이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도사리게 된다. 그 불확실성 가운데서 누군가는 초과 이익을, 다른 누군가는 초과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중앙은행 고위인사들에게는 남다른 전문지식과 정신무장이 더 크게 요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