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경제 주변에 어른거리는 불황의 그림자는 생산성이 저하되어서도 아니고 사람들이 게을러서도 아니다. 과잉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취약한 수요기반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고도성장을 달성하면서 발생하는 수요부족 현상은 말할 것도 없이 사회적 보상체계가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턱없이 낮은 노동소득분배율은 차치하고라도 가계소득증가율과 기업소득증가율을 비교해보면 분배구조 왜곡의 심각성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근심스러운 진실이다. 소득순서대로 차례 차례 줄을 세웠을 때 가운데가 되는 중위소득이 1인당 평균소득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면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성장지상주의 패러다임으로 불균형 성장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장기화되다보니 성장과 분배의 균형 감각이 상실되었다. 성장과 분배에 대한 불균형 불감증이 번지면서 중산층 내지 고소득층이라고 자처하는 인사들조차 자신의 소득이 1인당 평균 국민소득(GNI)에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을 지나치고 있다.
어느 언론계 저명인사는 자동차회사 정규직근로자들이, 사회지도층인 자신보다도 더 많은 1억 원에 육박하는 연봉을 받으니 세상이 잘못 되었다고 한탄하였다. 노동조합이 극성을 부려 과도한 임금인상으로 경쟁력이 낮아지고 성장의 장애가 된다는 이야기다. 편향된 애국심은 그릇된 판단을 낳게 마련이다.
4인 가족(우리나라 가구 평균가족 수는 3.66명)을 가정하면 가장의 연봉 1억 원은 1인당 연소득 2500만 원으로 2013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6200 달러에 훨씬 못 미친다. 생각해보자.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초일류기업의 근로자들의 보수가 국민 1인당 평균 부가가치(value added) 창출액보다 낮은데도, 초고액 임금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임금을 생산성과 비교하지 않고, 적당히 먹고 살게 하면 된다는 전체주의(全體主義) 발상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성장위주의 의식구조가 뿌리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2013년 현재 우리나라 가구의 중위소득은 1인당 평균 GNI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3800만 원 정도다. 정부에서는 중위소득의 150% 수준인 5500만 원 이상의 소득계층을 고소득층으로 간주하고 고율의 세율을 부과하기 시작한다.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1억2000만 원 이상이 넘으면 초고소득층으로 간주하고 최고 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1인당 평균소득에 못 미치는 소득자에게 부과하는 세율과 배당소득만 해도 때로는 수천억 원에 달하는 대기업집단 총수들의 세율과 똑같다. 이 어처구니없는 진실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불균형 불감증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1920년대 대공황(大恐慌)은 고소득층의 소득세율이 저소득층의 세율과 엇비슷해지면서 시작되었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보험료를 보더라도 연소득이 3850만원만 되면 최고 보험료를 적용한다. 연봉 3850만원이 되면 수십억, 수백억 원을 버는 초고소득층이나 똑같은 액수의 연금 보험료를 내고 있다. 대다수 연구기관들이 국민연금 고갈을 염려하지만, 고소득자에 대한 연금 보험료를 누진적으로 부과하면, 문제 해결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싱크 탱크들이 이 간단한 원리를 외면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경제 성장과 발전이란 일정기간 중에 일국경제가 창출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공급이 증가하여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의 총효용도 늘어나는 것이다. 성장의 결과 늘어난 재화와 서비스가 국민들의 후생과 복지 향상과 연결되어야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에게 경제적 동기가 부여되고, 사회적 수용능력이 배양되면서 성장잠재력이 확충된다.
성장제일주의 사고가 중장기 경제성장의 부메랑으로 변하고 있다.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이 초래하는 부작용을 장기간 외면하다가 급기야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가계는 토양이고 기업은 나무다. 토양이 메말라 가면, 크게 자란 나무도 어느 순간에 고사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땅이 기름지면 좋은 싹은 금방 거목으로 자라날 수 있다. 늦었더라도 성장과 분배의 대한 의식구조가 탈바꿈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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