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성장" "성장"하다보니 그저 성장률만 달성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 의식구조가 형성되었다. 국민소득 1000 달러 미만 시대에는 당장 살기가 어려워도, 고도성장을 통하여 나라가 부강해지면 결국 자신도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믿음 내지는 환상 같은 것이 있었다. 사람들의 근검 절약이 한국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됐다.
고도 성장을 이룩한 것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기도 하지만, 막상 자신의 처지와 비교해보면 가장으로서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2013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6000 달러(한화 2900만 원)를 넘어섰는데, 4인 가족일 경우, 연소득이 1억 1000만원은 되어야 중간축에 낄 수 있다.
지표로 나타난 국민소득 수준과 자신의 실제 소득을 견줘볼 때, 대다수 국민들의 소득은 그 절반에도 크게 못 미친다. 빈부격차가 이미 한계상황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기업의 이익도 결국 주주들의 소득으로 귀결된다. 치안, 국방비는 물론 공기업 직원 급여도 소득에서 내는 세금에서 지출되므로 결국 1인당 소득에 크기에 포함된다.)
과거에는 정권의 인기도도 성장률에 달려 있었고 정치 슬로건도 `747` 공약처럼 성장률을 높여 선진국으로 이끌겠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사회적·경제적으로 성공한 나의 지인은 한국인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 오늘날처럼 잘 먹고, 잘 살게 된 것은 눈부신 경제성장 때문인데, 인권이나 목숨 운운하는 것은 불평분자라고 몰아세운다.
성장을 위해서 인간이 희생되어도 된다는 발상인데 그것은 정작 자본주의, 자유주의의 진면목이 아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바로 군국주의자 또는 공산독재자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다양한 혜택을 많이 받은 이들이 전체주의 획일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음은 어찌된 영문일까? 어쩌면 우리는 "성장", "성장"하다가 그 함정에 빠져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이 나타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말하는 성장을 위하여 희생되어도 괜찮은 인권과 목숨은 저나 제 자식의 것이 아니라, 저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웃이 어찌 사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말로 하는 `거짓 애국심`을 팔아 엉뚱한 사람들을 불만세력으로 몰아버리니, 오히려 성장의 장애가 되는 대립과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애국은 함께 잘 살자는 바람이지, 저 혼자만 잘 살자는 것이 아니다.
성장, 국제수지, 물가 같은 거시경제 정책목표는 중간목표여야 하고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이 최종목표가 되어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하여도 소수의 사람들은 수천만 달러, 수억 달러의 소득을 올리는 반면, 대부분 사람들의 소득은 불과 수천 달러에 그친다면 성장의 동력인 사회적 수용능력이 저하되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성장과 발전의 토대인 동기양립(incentive compatibility) 시스템을 해치고 중장기 성장잠재력을 시나브로 저하시킨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저하되고 있는 것은 커진 파이를 광속에 오랫동안 잠가 놓으니 곰팡이가 끼지 시작한 셈이다.
파이를 더 키워나갈 동력이 점차 소진되어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모내기 날에는 동네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막걸리도 마시게 해야 사람들이 힘을 내고 모내기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이치와 같다. 무조건 "성장만 하면 된다"면서 그 과정이나 결과를 생각하지 않다가 그 그림자가 너무 짙어지고 있다.
눈부신 성장속도에 비하여 조세정의 같은 사회문화구조가 개선되지 못하였음을 되돌아보고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