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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함정 논란과 기준금리

  • 2015.03.31(화) 15:32

머뭇거리던 금융통화위원회가 3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내리자마자 3년 물 국고채 금리도 기준금리 수준으로 삽시간에 하락했다. 최근에는 콜금리가 기준금리 이하 수준에서 형성되기도 한다. 채권시장이 이처럼 신속하게 반응하는 것은 일각에서 우려하는 바와 달리 오늘날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유동성함정이 존재하지 않으며 향후 금리인하 여지가 크게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람들의 화폐보유 동기와 관련하여 유동성함정의 의미를 살펴보자. 논의를 간명하게하기 위하여 수익성자산을 채권으로 제한하여 생각해보자.

만약 금리가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여 채권가격이 더 이상 상승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언젠가는 금리가 다시 상승할 것이고 그에 따른 채권가격 하락을 예상할 수 있다. 투자자들은 높은 가격에 채권을 매각하고 유동성이 높은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하다가, 금리가 상승하고 채권가격이 하락하면 다시 채권을 매수하는 투자전략을 펼칠 것이다. 이 같은 대기성 유휴자금(idle money)을 투기적 동기의 화폐수요라고 부른다.

반대로 금리가 최고점까지 상승하여 채권가격이 더 이상 하락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향후 금리하락에 대응한 채권가격 상승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합리적 투자자들은 유휴자금 대부분을 (장기)채권에 투자하고 채권가격 상승을 기다리게 되므로 투기적 동기(speculative motive)의 화폐수요는 자연히 줄어든다.

경기침체가 막바지에 이르러 시장에서 채권금리가 최저점으로 떨어져 채권가격이 더 이상 오를 수 없다고 예상할 경우에는 유동성을 아무리 확대해도 채권금리가 더 이상 하락하지 못한다. 투기적 동기의 대기성 자금만 늘어난다. 이처럼 금리가 최저점에 도달하여 투기적 화폐수요가 무한 탄력적으로 늘어나는 상태를 케인즈는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이라고 불렀다.

금리가 최저수준에 달한 것으로 인식되는 유동성함정이 존재하면 유동성을 완화해도 금리가 더 이상 하락하지 못하고, 대기성 자금 즉 유휴자금만 급속하게 늘어난다. 기업은 채권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투자자들은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하는 불균형 현상이 벌어지고 통화금융 정책은 무력해진다. 

금리를 더 이상 하락할 수 없게 하는 유동성함정의 존재 여부는 시장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준다. 특히 불황이나 디플레이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는 통화정책의 한계를 가늠하게 해준다. 만약 시장이 유동성함정에 빠졌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돈을 풀 경우 시중에 대기성자금만 쌓여가다가, 어느 시점에 경기가 회복과 함께 돈이 돌기 시작하면 무서운 후폭풍이 일어난다.

반대로 물가를 잡겠다고 유동성을 옥죄다가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뒤늦게 무차별적으로 유동성을 살포해야 한다. 줄다리기를 하다가 줄이 끊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양쪽이 다 쓰러진다. 즉 디플레이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다가는 언젠가는 무제한으로 돈을 풀어야 한다. 무서운 디플레이션 소용돌이가 지나간 다음에는 인플레이션 악령이 덮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유동성함정이 존재하지 않고, 시장금리가 기준금리를 따라 곧바로 하락했다는 사실은 시장에서는 미래의 경제 상황을 지금보다 더 어둡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시장은 현재금리가 높아 더 내려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국경제 주변에 어른거리는 디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인하 여지가 크게 남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어쩌면 금리인하 타이밍을 놓쳐가며 불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다는 시장의 항변인지도 모른다. 불황에 대비할 금융정책 수단의 여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시장이 옳은지 아니면 금통위가 옳은지는 단정하지 못한다. 분명한 사실은, 2015년 현재 시장에서는 미래의 경기전망이 더 어둡고 투자수익률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은행과 시장과의 긴밀한 대화가 요청되는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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