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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 소용돌이

  • 2013.11.22(금) 10:52

주요 선진국들이 인플레이션보다 파괴력이 더 큰 디플레이션이 몰고 올 위험과 불확실성을 차단하고자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일본은 엔화를 마구 찍어내도 좀처럼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FRB는 “헬리콥터로 돈을 무차별 살포하고도” 저물가 현상을 걱정하고 있다. 유럽 중앙은행도 물가하락 조짐이 나타나 속으로 애를 태우고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지만, 세계경제가 동질성을 가지고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우리는 인플레이션 타령을 하고 있다. 공급과잉과 함께 수요부진 현상이 겹쳐 우리나라에서도 저물가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독·과점과 담합이 흔한 공급자 위주의 시장에서 나타나는 물가의 하방경직성을 감안할 때, 지금과 같은 저물가 현상은 소비수요가 급격하게 저하되었음을 시사한다. 금융통화위원회의 인플레이션 경고와 반대로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슬그머니 다가왔음을 느끼게 된다.
▲ 한·미·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자료: 한은 ECOS, 미국 노동통계국, 일본통계청) 

가계의 소비여력이 없어지면서 유효수요가 급감하며 기업의 생산 활동이 줄어드는 디플레이션 현상이 심해지면 공황으로 진행된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무섭지만 디플레이션 기대심리는 정말 무섭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팽창하기 전에 미리 예방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처럼, 디플레이션 기대심리 또한 사전에 차단하지 않으면 그 대가를 쓰라리게 치러야 한다.

디플레 심리가 번지면 가계는 당장 필요한 생활필수품 외에 내구재 구매를 망설이고, 기업은 디플레이션 현상이 멈출 때까지 설비투자를 꺼린다. 산업생산은 더 위축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가계의 구매력은 더욱 감소되고 소비수요가 더 악화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디플레이션이 다시 디플레이션을 불러오는 디플레이션 소용돌이(deflationary spiral)는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다. 일본의 경우 잃어버린 10년이 어이하여 다시 잃어버린 20년으로 진행되었는지 생각해보자. 디플레이션 조짐이 있는데도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뒤늦게야 유동성을 마구잡이로 퍼붓고 있으나 디플레이션 망령은 얼른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지만, 디플레이션은 절망에 이르게 한다. 인플레이션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월급이 오르면 사람들은 잠시 소득이 늘어난 것으로 착각하는 화폐환상(money illusion)에 빠진다. 마찬가지로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물가가 떨어져 돈의 가치가 높아졌다고 오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기업은 도산하고 일자리는 없어지는 공포가 기다리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채무자의 굴레를 더욱 조여 간다. 전반적 물가수준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전개된다면, 부채의 가치가 불어나 부채상환능력은 그만큼 더 악화되어 부채가 많은 가계나 기업은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자산 디플레이션 현상은 상당히 진행되었다. 가계부채를 갚으려 보유주택을 매각하려고 해도, 더 떨어질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부동산 구입을 주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시장에서 매매거래 없이 전세수요가 늘어나 서민들을 더 괴롭게 하고 있는 상황을 직시하여야 한다. 서민 경제가 더욱 피폐해져 어느 날 갑자기 전세 값이 폭락하는 사태에 대한 도상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디플레이션을 사전에 막지 못하고 뒤늦게 사후약방문을 쓴다면, 일본이나 미국처럼 엉망진창으로 돈을 뿌려야 한다. 세상물정은 바뀌기 마련인데, 언젠가 경기가 회복되고 갑자기 돈이 돌기 시작하면, 많이 풀린 유동성이 물가를 자극하여 서민생활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 세상 모든 병리현상이 그렇듯이 때를 놓치면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처방은 별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이야기다.

( 졸고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시대의 패러다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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