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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판 분양시장 언제까지 모른척 할건가

  • 2015.09.18(금) 18:01

[Watchers' Insight]
분양권 실거래가 공개로 드러난 '시장 투기화'

국토교통부가 17일 전국의 아파트 분양권과 입주권에 대한 실거래가 정보를 공개하면서 '깜깜이' 시장이었던 분양권 전매 시장의 실태가 드러났다.

 

분양권은 분양한 아파트의 공사가 마무리되면 입주할 수 있는 권리다. 아파트 청약 당첨을 통해서 발생하지만 다른 이로부터 살 수도 있다. 입주권은 재개발·재건축 조합원이 부여받는 분양권과 비슷한 성격의 권리다.

 

분양권과 입주권 거래에도 2007년부터 실거래가 신고제가 적용돼 왔지만 지금껏 전국적인 실거래가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서울시와 경기도만 올 들어 개별적으로 관련 정보를 공개해 왔다.

 

이제라도 분양권의 실제 거래가격이 얼마인지 또 분양권이 얼마나 많이 거래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시장 참여자들이 알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 그래픽 = 김용민 기자

 

하지만 실거래 현황을 통해 확인한 분양권 시장의 거래 실태는 달갑지만은 않다. 과열된 분위기 속에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투전판'으로 전락한 분양시장과 분양권 거래 시장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대구·광주·울산 등 지방 광역시의 분양권 전매거래 실태는 '투기판' 그 자체였다.

 

지난 6월 평균 청약경쟁률 364대 1을 기록하며 분양된 부산 '해운대자이2차'는 지정계약 마감 뒤 하루만에 125건의 분양권이 전매됐다. 계약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일반분양 물량(특별공급 포함 489가구)의 4분의 1(25.6%)이 거래된 것이다. 현재까지 거래 건수는 322건으로 3분의 2에 달한다.

 

7월 광주에서 평균 청약경쟁률 49.2대1로 분양된 '어등산 한국 아델리움 1단지'는 분양 물량이 320가구인데 8월말까지 181건의 분양권이 거래됐다. 한 달도 채 안되는 기간동안 56.6%의 물량이 되팔린 것이다.

 

울산에서 4월에 분양된 '약사 더샵'은 일반분양이 189가구인데 지금까지 이 물량의 72.5%에 해당하는 137건의 전매거래가 일어났고, 대구에서 5월 분양된 신천동 '동대구반도유보라'는 지금까지 총 224건의 분양권 전매가 이뤄졌다. 일반분양분 564가구의 39.7%에 해당하는 규모다.

 

많게는 '4분의 3' 가까운 분양권이 계약한 지 석달도 안돼 되팔린다는 건 분양시장에 가(暇)수요가 들끓고 있다는 얘기다. 집 장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당첨되면 웃돈만 빼먹고 빠지겠다는 계산이 지배하는 투기시장이 된 셈이다.

 

▲ 그래픽 = 김용민 기자

 

분양권은 무분별한 거래를 막기 위해 수도권에서는 민간택지 6개월, 공공택지내 민영주택은 1년의 전매제한 기간을 두고 있다. 하지만 지방은 전매제한 기간이 따로 없다. 2008년 이후 주택시장이 침체되면서 미분양이 쌓이자 관련 규제를 모두 풀어버린 것이다.

 

특히 지방은 재당첨 금지기간도 없고, 당첨된 통장이라도 6개월이면 다시 1순위 자격을 얻을 수 있어 청약문턱이 없다시피 하다. 그러니 '로또' 사듯 쉽게 청약통장을 던지고, 분양권을 되팔고 다시 청약에 나서는 식의 투기가 횡행하게 된 것이다.

 

이런 비정상적 투기판을 만든 것은 결국 정부다. 경기회복이라는 목표 아래 수 년째 규제완화 일변도의 정책을 편 것이 분양시장을 투기판으로 변질시키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분양권 시장의 실거래 자료를 보면 '다운계약(실제 매매 당사자간 주고받은 돈 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서를 작성, 신고하는 것)' 냄새도 난다.

 

수 천만~1억원씩 웃돈이 붙어 거래된다고 알려졌던 것들이 2000만원 안팎만 붙어 신고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개자료 상당수가 다운계약이라면 '실거래가'라는 정보의 가치도 퇴색된다. 탈세도 문제지만 거짓 정보는 시장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든다.

 

과열이 무서운 것은 급랭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최근 분양시장이 2006~2007년을 닮았다고 한다. 당시의 분양시장 호조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급격히 꺾이며 2008년말 14만채에 가까운 지방 미분양이란 상처를 남겼다. 

 

분양시장, 그리고 이와 맞물린 분양권 거래 시장의 과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이미 마련돼 있다.

 

2011년 이후 전국에서 한 곳도 적용되지 않는 '투기과열지구'라는 제도는 지정 기준으로 '2개월간 청약경쟁률이 5대 1을 초과하는 경우'를 두고 있다. 이정도만 해도 '투기' '과열'로 볼 수 있단 얘기다.

 

또 지난 4월 민간택지에서는 전부 풀린 분양가상한제에도 '직전 3개월간 평균 청약경쟁률이 20대 1을 초과한 지역' 등은 상한제 적용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부산 대구 등지의 과열 수위는 이런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 분기별 지방 광역시 청약경쟁률 추이(자료: 금융결제원, 건설산업연구원)

 

과열이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주택 실수요자들이 입기 때문이다. 바늘구멍이 된 청약 경쟁, 높아진 분양가와 수 천만원의 전매 웃돈은 그 자체로 실수요자들에게는 내 집 마련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때부터 강조한 주택정책 기조는 '시장 정상화'와 '주거복지 실현'이다. 실수요자들의 주거복지를 저해하는, 지방 분양시장의 비정상적 상황을 주택당국이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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