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동네 지주였다. 소위 내 땅 밟지 않고 다니는 사람 없다며 떵떵거리며 사셨다. 덕분에 우리 남매들도 동네에선 깨나 대접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생을 마감하셨다.
어머님과 우리 4남매는 장례를 치르고 49재를 지내고 나서야 상속세라는 현실에 부딪혔다. 200억원이 넘는 자산을 남기셨지만 안타깝게도 전부 땅이었다. 아버님은 돈이 모이는 족족 땅을 사서 모았고 다른 재산은 집 한 채가 전부였다.
파장은 간단치 않았다. 세금 낼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100억원 가까운 상속세를 내야 했지만 가진 건 모두 땅일 뿐 현금이 없었다. 우리 4남매는 세금 낼 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친척과 지인들 여기저기서 꾸기도 하고 아버님이 남긴 토지를 담보로 은행 대출도 받았다. 하지만 그렇게 끌어모은 돈은 20억이 채 못됐다.
어쩔 수 없이 연부연납이란걸 신청했다. 가산금을 조금 내는 대신 세금을 5년간에 걸쳐서 나눠내는 제도란다. 가산금이 3.4%였다. 80억의 3.4%, 월 2260만원이 이자 성격의 가산금이다. 원금을 갚을 도리가 없는데 이자만 1년에 2억 7200만원을 내야 한다. 답답하고 암담한 상황이다. 남매들은 모두 지쳤다. 여기저기 모은 돈 20억원으로 첫 해의 상속세를 내긴 했지만 당장 내년은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필자가 지난해에 상담했던 어느 고객의 하소연이다. 아버지가 200억원의 재산을 남기셨는데 상속세 때문에 가족들이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사실 세무사인 필자로서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자산가들에게 상속세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상속세를 낼 돈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대부분의 자산이 토지, 상가, 주택 같은 부동산에 편중돼 있어 정작 세금 낼 현금을 마련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기업의 흑자도산처럼 겉으로 보이는 재산 현황만 번지르르할 뿐 정작 필요한 현금이 돌지 않아 부도가 나는 형국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에 빠져있는 베이비 부머들에게 포트폴리오니 자산배분이니 하는 구호들은 여전히 낯설고 믿음이 가지 않는다. 돈이 생기면 가장 안전하고 믿을만하게 묻어둘 대상이 땅이나 주택이었다. 금융자산의 비중이 많게는 60~70%에 육박하는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에 비해 대한민국 자산가들의 재산은 80% 이상이 부동산에 몰려 있다.
물론 세법상 상속재산의 절반이상이 부동산과 비상장주식과 같이 유동성이 부족한 재산으로 구성된 경우 현금이 아닌 물건으로 납부할 수 있는 상속세 물납제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이번 사례에서도 상속인들은 100억원 가까운 상속세를 해결할 길이 난감하자 관할 세무서장에게 물납 신청을 했었다. 그러나 물납 신청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상속세법상 물납을 할 수 있는 명백한 법규정이 있지만, 또 다른 규정에서는 물납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관할세무서장에게 주고 있다. 해당 물건의 권리 관계가 복잡하거나 관리 처분이 쉽지 않은 경우에는 관할 세무서장의 판단에 따라 물납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이번 사연의 토지들 역시 거래 자체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다, 이뤄지더라도 기준시가 이하로 아주 간간이 거래될 뿐이었다. 세무서 입장에서는 물납을 받아줄 경우 이를 현금화하여 상속세를 제대로 충당해 낼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에 물납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설사 물납을 받아준다 하더라도 상속인들 입장에서는 손해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아파트를 제외한 부동산은 기준시가에 따라 평가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래가액은 20억원이 되는 상가라 하더라도 기준시가가 10억원이라면 물납될 때는 10억원으로 평가된다.
더군다나 물납을 허용해주는 부동산 역시 세무서에서 관리처분이 쉬운 재산을 위주로 받아주므로 상속인의 손해가 크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남긴 부동산이 시골의 맹지와 수도권의 주택, 강남의 상가가 있다고 가정하자. 상속인들 입장에서야 시골 맹지를 물납하고 싶겠지만 세무서는 강남 상가부터 가져가게 마련이다. 기준시가 대비 시세가 높고 매매하기 쉬운 물건 위주로 물납을 받아야 세무서로서도 낭패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상속세는 납부재원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내가 죽으면 자식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대책없이 부동산만 붙잡고 있다가 갑작스레 불귀의 객이 돼버리면 남겨진 자녀들의 부담이 너무 크다. 특히 자산이 부동산이나 비상장법인의 주식에 집중돼 있다면 금융재산의 비중을 늘리거나 국세청도 추천하는 종신보험 등의 금융상품을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