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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vs 평범한 세무사

  • 2017.04.20(목) 08:00

황순우 세무사의 '새로 보는 세금'

남다른 계산 감각과 칼같은 정확성을 가진 고알파 세무사는 친구인 한평범 세무사와 같은 사무실에서 동업중이다. 둘 다 미국에서 유학한 까닭에 서로를 각각 '알파고'와 '평범한'으로 부르곤 한다. 
 
어느 날 슬픈 표정의 노여사님과 중년이 된 따님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모녀가 세무상담을 원했던 이유는 상속세와 관련된 재산 분할 때문이었다. 워낙 자신감이 넘치는 알파고는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지만 평범한 세무사는 왠지 모를 걱정에 싸인 여사님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따님도 짐짓 신경쓰이긴 마찬가지다. 
 
먼저 따님이 상황설명을 했다. 최근 암판정을 받은 어머님은 이미 칠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다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운좋게 이번엔 암을 이겨낸다 하더라도 어머님의 죽음을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머님의 재산은 남편 사망으로 넘겨받은 주택과 상가건물, 보험금 등을 포함해 30억 정도였다.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뒀고 성인이 된 네 명의 손주들도 있다. 아들은 사업가이며 딸은 평생 가정주부였다.
 
여기까지 들은 알파고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신나게 해결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배우자 없이 30억원의 재산을 상속하시게 되면 상속세가 10억이나 됩니다. 우선 상속세를 절감하시려면 사전증여를 하셔야 되고 사전증여는 기준시가가 낮은 부동산이나 임대수익률이 높은 상가를 우선적으로 하시는게 정답이니 임대료가 꽤 나오는 용두동 상가부터 자녀분께 증여하시죠. 

증여는 여러 사람에 나눌수록 세금이 적어지니까 아드님과 따님에게 나눠 하시구요. 할머님이 암판정을 받아서 솔직히 5년까진 모르겠지만 10년은 사신다는 보장이 없으니 상속인이 아닌 자, 예를 들면 며느리나 손주들에게 증여하시는 것도 좋아요. 

참! 현재 할머님은 1세대 1주택자이시니 기준시가는 4억원이지만 시가는 8억원쯤 하는 신당동 주택을 당장 파셔도 양도세가 한 푼도 없어요. 그걸 팔아 생긴 돈으로 성인이 된 손주분들에게 5000만원씩 증여하시면 세금이 한 푼도 없답니다."

 
▲ 그래픽/변혜준 기자 jjun009@

하지만 모녀는 알파고의 시원시원한 설명을 듣고도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사님의 낯빛은 어두워져만 가는 걸 평범한 세무사는 감지할 수 있었다. 알파고의 제안은 현행 세법상 세금을 가장 덜 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솔루션이었는데 말이다.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평범한 세무사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사모님 그런데 왜 따님하고만 오셨어요? 아드님은 사업하느라 많이 바쁘신가요?" 그제서야 여사님은 천천히 큰 숨을 쉬며 가슴 속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하셨다. 
 
요약하자면 아들은 장남이지만 사돈댁과 며느리에 휘둘리며 부모 모시기를 소홀히 했고 대신 딸이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뿐 아니라 어머님까지 살뜰히 챙기는 효녀란 말씀이다. 문제는 아들은 이미 아버지의 재산을 상당히 물려받았고 예전부터 장남을 중시하던 아버지 덕을 보고 살아왔으나 결혼 후 며느리와 처가댁의 간섭, 혹은 다른 한편의 도움을 받으며 정작 부모님께는 무심했다. 반면에 딸은 가난한 공무원 남편을 만나 넉넉치 않은 봉급을 쪼개 쓰며 평생을 살아왔지만 돈 욕심 하나 없이 지금까지 어머님을 잘 돌봐왔다. 그래서 예전에는 자신도 그저 아들 아들했는데 지나고보니 딸에게 너무 미안하고 한편으론 너무 고마워서 본인의 재산은 아들이 아닌 딸에게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셨다. 
 
알파고는 1세대 1주택 비과세 어쩌고저쩌고하며 지금 살고계신 주택을 팔라고 했지만 신당동 주택은 먼저 간 남편과 30년 이상 살아온 집으로 자녀들과 추억까지 서린 소중한 곳이라 본인이 눈감을 때까진 억만금을 준대도 팔 마음이 전혀 없었고, 더군다나 상속인에 대한 증여시 사전증여분 10년치가 합산된다며 상속인 외의 자는 5년치만 합산되니 며느리에게 증여하란 말에 여사님은 거의 화가 날 지경이었다. 며느리와 사돈네와 관계가 그리 좋진 못했던 모양이다. 안 그래도 아들이 변해간게 며느리 탓이라 믿고 있는데 그런 며느리에게 재산을 물려주라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아들과 며느리의 이야기를 할 때 느껴지는 말투에서 평범한 세무사는 이미 뭔가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알파고는 상대방의 어투와 자세, 눈빛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평범한 세무사는 인격대 인격으로 그 사람과의 진정성있는 나눔을 우선한다. 세금에 대해선 문외한인 모녀가 더군다나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여기까지 찾아올 때는 남다른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여사님의 속 이야기를 다 들은 세무사는 모녀에게 현실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현행 민법상 유언을 통해 따님에게 다 드릴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아드님이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을 통해 본인의 법적상속분의 1/2까지 찾아갈 수 있으니 이러한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만큼만 아드님께 남기시고 나머지를 따님에게 드리도록 말이다. 공증유언을 해두시고 미리 아드님께도 잘 설명해 드리면 크게 문제될 일이 없을거라 친절히 설명해 드렸다. 비로소 어두웠던 모녀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알파고가 등장하고 나서 50년 이내에 없어질 직업으로 세무사가 2위에 올랐단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기장대리와 세금계산, 신고 등은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납세자의 마음을 읽고 눈높이를 맞추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건 결국 사람의 몫이 아닐까? 위대한 알파고보다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세무사가 그저 평범하지만은 않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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