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들의 전통적인 수입원이 흔들리고 있다. 사업자의 장부를 대신 작성해 주는 장부기장 업무를 모바일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앱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어서다. 이들 앱은 영수증 등 증빙자료를 스마트폰으로 전송하면 자동으로 장부를 작성해 주고 세무신고까지 대신해 준다.
아직 시장을 잠식할 수준은 아니지만 최근들어 서비스 품질이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세무사 시장의 잠재적 경쟁자로 떠올랐다. 온라인과 모바일상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업자를 대상으로 영업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기반의 일반 세무사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9월말 기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검색되는 장부기장 앱은 10여개에 이른다. 2015년에 생긴 ▲모바일택스 ▲아이홈택스 ▲이지샵자동장부를 필두로 2016년에는 ▲세친구가 등장했고 2017년에는 ▲택스나우 ▲택스원스탑 ▲제로택스 ▲택스플래너 ▲머니핀 ▲캐시맵 등의 앱이 쏟아졌다.
대부분 영수증 등 매출과 지출증빙을 사진으로 찍어서 전송하면 앱 운영자가 수기로 입력해서 장부를 써주는 방식이다. 요즘 유행하는 명함 관리앱과 유사하다. 세무사 사무실을 방문할 필요가 없고 촬영해 전송만 하면 되기 때문에 수수료도 저렴하다.
일반적인 세무사 사무소나 세무법인에서 매출 1억원 미만 사업자를 대상으로 월 10만원에서 15만원 안팎의 기장수수료를 받는 반면 일부 앱은 전통 기장대리 수수료의 10% 수준인 월 1~2만원으로 장부 기장을 끝낼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최대 100만원의 수수료 절감이 가능한 셈이다.
▲ 기장앱 홍보페이지(왼쪽 이지샵, 오른쪽 모바일택스) |
모바일이라는 편의성과 저렴한 수수료까지 탑재한 탓인지 장부작성 앱의 평가도 나쁘지 않다. 관련 앱으로는 가장 오래된 '이지샵 자동장부'는 앱 다운로드 수가 5만건을 넘었고, 앱 평가를 남긴 644명의 평균 별점이 4.3점(5점만점)으로 준수하다.
그밖에 모바일택스 4.5점, 머니핀 4.4점, 세친구 5점 등 아직 구글앱스토어에서 평가를 받지 못한 제로택스를 제외하면 모두 4점대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대중화 돼 있는 국세청 홈택스 앱(500만 다운로드)이 2.9점, 모바일 국세청 앱(10만다운로드)이 3.6점을 받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 기장은 기본...세무신고와 조정까지
장부기장 수수료는 세무사의 기초 수입원이다. 대다수 사업자는 세금을 내기 위해 매월 회계처리한 장부를 작성(기장)하고 보관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 기장업무를 세무사들이 도맡아 처리한다.
세무사들 입장에선 매월 꾸준한 수수료 수입이 보장되는 알짜 수입원인 셈이다. 특히 당장 고정 수입이 필요한 개업 세무사들에게는 기장업무를 대리할 사업자를 찾는 게 최우선 과제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100명의 사업자만 관리하더라도 1개 사업자 당 월 10만원씩, 월 1000만원의 수입이 보장된다. 실제로 보통의 개인세무사들은 절반 이상의 수입을 기장료에서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장부를 써주면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신고업무도 따라온다. 세금신고를 위해서는 회계상 이익을 세법상의 이익으로 바꿔주는 세무조정도 해야하는데 이 업무 또한 기장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수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모바일 세무 앱이 이 생태계를 뒤집고 있다. 기장수수료를 1만원대까지 떨어뜨리는데 그치지 않고 매출매입을 분석해 세무조정과 세무신고도 묶어서 대행하고 있다. 당연히 수수료도 저렴하다.
일부 앱에서는 매입매출과 재무제표 분석을 물론 월 결산서비스를 무료로 해주고 급여관리, 전자결재 등을 할 수 있는 툴도 제공하고 있다.
모바일 앱에 대한 기존 세무사들의 반감은 적지 않다. 종전에 세무사와 사무장이 발로 뛰어서 영업을 해야만 겨우 1~2곳의 기장대리 사업자를 따왔는데 모바일상에서 그 10%의 가격으로 사업자를 무더기로 쓸어 담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무대리 업계에서 1명의 세무사가 최대로 관리할 수 있는 기장대리 사업자는 100곳 정도로 보고 있는데 이들 앱 운영자들은 외형상 1명의 세무대리인이 천명 단위까지 기장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세무사법 위반의 소지도 남아 있다. 세무사법에는 세금신고를 위한 장부의 작성과 세무신고를 세무사의 고유 업무로 규정하고 있는데, 일부 장부기장 앱의 경우 세무사가 아닌 일반 기업이 운영자로 등록돼 있다. 세무사가 해당 기업에 고용됐을 수 있지만 일반 법인에 고용된 세무사는 세무사법상 독립된 세무사로 업무를 할 수 없다.
실제로 모바일 앱과 온라인 페이지에서 약 19만명의 유료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이지샵 자동장부의 경우 법인사업자인 한국정보통신이 운영자다.
세무사고시회 연구부회장인 장보원 세무사는 "다수의 장부기장 앱이 세무사법을 어기고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객을 유치한 후에 특정 세무대리인에게 넘기는 형태로 세무사법 위반 규정을 빠져나가는 것 같은데 일부 세무사들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세무사회 차원에서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 세무사는 "대형 법인이 세무사 1명 내세워서 수십만 사업자의 기장대리를 과점한다면 세무사라는 전문자격사 제도 자체가 무력화된다. 또 1만원 받고 사업자가 찍어준 증빙만 처리해주는 기장업무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신뢰도의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