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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잘살 놈년들아"

  • 2016.08.17(수) 10:06

[페북사람들]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서촌에 가면 할머니집이라는 분식집이 있다.


수원에 사는 김은평 씨는 떡볶이를 먹으려고
여자친구와 함께 할머니집을 찾았다.

이 더위에 이 먼 곳까지?
여자친구인 마정은 씨의 답변은 간단했다.

"말 그대로 할머니 맛이에요.
그래서 힘들 땐 이곳을 찾아요."



유재혁, 조예린 학생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인근 장애인 봉사단체에서
설거지 봉사를 마치고 이곳을 찾았다.

"배가 고프면 할머니집이 먼저 떠올라요.
여기에 오면 왠지 마음이 편해요.
물론 떡볶이 맛은 기본이죠."

조예린 학생은 3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나눔의 시간도 중요해요.
친구가 보고 싶은 건 당연하잖아요."



사실 할머니집은 이미 유명하다.
방송에도 나오고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광고판 하나 없다.
여느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분식집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한번 찾으면 누구나 단골이 된다.
먼 거리를 마다치 않고 찾는다고 한다.

욕을 해달라는 손님도 있다.
그러면 할머니는 "에이, 잘살 놈년들아"
시원하게 욕 한마디 던진다.

할머니의 욕을 들으면 떡볶이가 더 맛있단다.


할머니집 주인인 이은자 할머니는 75세다.

떡볶이 장사를 시작한 지 벌써 43년째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사이 5남매는 모두 훌쩍 자랐고
가게 한편엔 손자 손녀 사진이 내걸렸다.



인근 배화여고 학생들도 단골이다.
배우 김혜수, 한가인 씨도 그랬다.

할머니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두 사람 모두 자주 왔지.
혜수는 눈이 크고 똘똘하게 이뻤어.
가인이는 늘 친구들과 함께였어."


수많은 연예인이 다녀갔지만
역시 사인 한장 걸려있지 않다.

그 자리는
할머니의 맛을 그리워하는
손편지가 대신하고 있다.

명절이 되면 인사차 찾는 단골도 있다.
그맘때쯤이면 세뱃돈도 준비한다.

그 시절 여고생이
결혼 후 자녀들과 찾기도 한다. 

떡볶이 국물에 밥을 비벼 먹던
인근 학교 남학생들 역시
어느덧 중년이 되어 들르기도 한다.



할머니가 바쁠 땐
손님이 직접 계산하기도 한다.
신뢰가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할머니는 오래전 일화를 들려줬다.
“20년 전 즈음 일인데
남학생 4명이 돈을 가지고 도망갔어.
그런데 나중에 가져갔던 돈을 돌려줬어.

당시 한 학생은
지금 우리 집 전기를 고쳐주고
식자재를 납품하는 사장이 됐어.”

할머니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43년 전 문을 연 할머니집은
할머님에겐 친구이자 인생이다.

그동안 가계 문을 하루도
닫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오래전 단골 학생은 이미 60살이 넘었다.

40년 넘게 이어온 할머니 떡볶이의
인기 비결을 무엇일까?

좋은 재료에다 할머니의 손맛
그리고 정(情)이 더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43년 전 그날처럼 오늘도 할머니집엔
파릇파릇한 젊음의 재잘거림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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