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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vs 재계]⑤ LIG그룹 구자원 회장

  • 2014.01.24(금) 15:08

'父子 동시 구속' 불명예
LIG손보 매각에도 영향

이르면 다음달 항소심 선고를 기다리는 LIG그룹 구자원 회장과 장남 구본상 부회장에 대한 사법처리는 태광그룹과 동양그룹의 그것과 공통점이 있다.

 

2000억원대 기업어음(CP)을 사기발행해 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혀 기소된 점은 '동양사태'와 똑같다. 검찰이 여든 살 가까운 구 회장은 불구속 기소하고 후계자인 구 부회장만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지만 1심 법원이 구 회장을 법정구속한 점은 태광의 '모자 동시 구속'을 연상시킨다.

◇ 법원 "기업범죄 엄단"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는 LIG건설의 분식회계와 기업회생 신청계획 등을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수천억원대의 CP를 판매한 혐의 등을 인정하며 구자원 LIG그룹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2009년 암수술을 받아 건강이 좋지 않은 노(老)기업인을 검찰이 '종범'이라며 불구속 기소했음에도 법원은 준엄한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구속 기소된 구본상 부회장에 대해서도 징역 8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다만 함께 불구속 기소된 차남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은 "범죄를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양형 이유를 설명하면서 '기업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재판부는 "분식회계 관련 범행은 기업의 투명성을 저해하여 주주, 채권자, 거래 당사자 등에게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혔다"며 "결국에는 기업과 시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헌법상의 기본원리인 시장경제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기업범죄"라고 밝혔다.

이어 "기업회생 신청 계획을 알리지 않고 오너 일가의 담보 주식을 회수하기 위하여 자금을 조달해 약 800명에게 3437억원 상당의 피해를 입었다"며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다수가 막대한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꾸짖었다.

 

▲ LIG 그룹의 '사기성' CP 발행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중이던 지난 2012년 10월26일 구자원 회장이 서울 합정동 LIG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피해 투자자들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구자원 회장은 LG그룹 창업주(구인회 회장)의 동생인 구철회 회장의 장남이다. 그는 1964년 락희화학에 입사한 뒤 럭키증권 사장, 럭키개발 사장, LG정보통신 부회장을 거쳐 계열분리 이후 LIG손보 등 금융업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LIG그룹을 이끌어왔다.  2010년에는 건영건설과 한보건설을 인수·합병해 LIG건설을 계열사로 뒀다. 그러나 건설경기 침체와 재무구조 악화로 2011년 LIG건설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법원은 같은 해 9월 회생 인가 결정을 했다.

 

 

◇ 항소심 진행 중…이르면 내달 선고

이번 사건의 항소심 공판에서는 LIG건설의 분식회계 여부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가 심리 중인데 공판에서 검찰은 "재무상태가 나빠진 2010년 1분기부터 작성된 회계 장부에 관리회계, 재무회계 두 가지 기준이 나오는 게 바로 분식회계의 증거"라는 입장이다.

 

1심 재판부 역시 LIG건설이 2009년 4분기부터 두 가지 방식의 회계방식을 사용한 장부를 분식회계한 것으로 판결했다. 그러나 LIG 측 변호인은 "관리회계 방식은 2010년 당시 LIG건설 사장이 처음 부임하며 전임자가 운영해온 회사의 재정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새로 도입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대손충당금 문제는 항소심에서 새롭게 등장한 쟁점이다. 검찰은 LIG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때 대손충당금 설정을 의도적으로 책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무재표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LIG측은 "모든 사업장 마다 회계기준, 채무상태가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LIG그룹 총수 일가의 항소심 선고공판은 다음달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 엇갈리는 민사 판결

형사법원은 LIG그룹의 CP 판매를 '사기'로 인정했지만 배상을 둘러싼 민사에서는 서로 다른 판결이 나오고 있다.  CP를 판매한 증권사의 책임 유무와 그 정도에 대해 일선 법원들의 판단에 차이가 있는 것. 

 

 2010년 10~11월 3억원 상당의 LIG건설 CP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입은 투자자 2명은 CP를 판매한 우리투자증권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하면서 증권사의 책임을 60%로 인정하며 1억 5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증권사 책임을 30%로 낮췄다. 서울고법 민사10부는 두 사람에게 우리투자증권이 각각 5700만원, 2800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증권사가 제시한 투자설명 자료에는 투자에 부정적인 요인이 기재되지 않았다"며 "당시 증권사는 LIG그룹 계열사들의 지원 가능성을 부각시키며 LIG건설에 대해 균형있는 정보를 명확히 설명해 투자자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할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원고(투자자)들도 사전에 투자를 신중히 검토해야 했고 증권사의 설명의무 위반 정도도 비교적 가볍다"며 증권사의 배상책임을 30%로 낮춘 이유를 설명했다. 이 항소심 판결에 투자자들과 증권사 모두 상고해 증권의 최종 책임 여부는 대법원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판결도 있었다. 또 다른 LIG건설 CP 투자자들이 낸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우리투자증권이 30%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 민사12부는 LIG건설 CP 투자자들이 CP 판매사인 우리투자증권을 상대로 낸 1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증권사 책임을 30%로 인정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높은 수준의 금융 지식과 CP에 대한 투자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만한 투자자에게는 증권사의 설명이 미흡하더라도 배상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판결 이유였다. 이 판결 역시 투자자들이 상고해 대법원에서 판단이 내려질 예정이다.

앞서 LIG건설 명의 CP에 투자해 손실을 본 또 다른 투자자 204명은 지난해 초 LIG, LIG넥스원 등을 상대로 1억2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 LIG손보 매각에도 영향

지난해 11월19일 LIG그룹은 LIG건설 기업어음 투자자 피해 보상금 마련을 위해 총수 일가가 보유한 LIG손보 주식 전량(20.96%)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LIG손보는 2012년 그룹 전체 매출 12조 원 가운데 10조원 가까이 차지할 정도의 절대 주력 계열사다. 구 회장이 투자자 보상을 위해 사재 730억원을 내놓았지만, 많이 부족해 그룹의 알짜, 핵심계열사를 처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손보업계 4위인 LIG손보의 오너분 주식가치는 3000억원대지만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합치면 매각가는 5000억원대로 예상된다.

LIG손보 새 주인으로 오르내리고 있는 KB금융, 신한금융, NH농협금융, 메리츠금융지주 등은 서로 눈치게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판 결과와 경제상황에 따라 매각 가격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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