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은 잊어라, 뉴노멀의 시대가 왔다"
경제대국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온 중국이 국가 경영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정했다. 5세대 지도부를 이끄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주창하는 '뉴노멀(New Normal)'이다.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정상 상태, 신(新) 질서라는 의미로 중국에서는 '신창타이(新常態)'로 불린다. 성장 기반까지 잠식하는 무분별한 고성장이 아니라 미래에 지속가능한 안정적 성장의 새 틀을 짜겠다는 전략이다. 1978년 개혁개방으로 문호를 열어젖힌 이후 중국 경제가 한 번도 걸어보지 않았던 길이다.
한중 수교이후 중국 특수를 통해 성장 모멘텀을 확보해 온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중국의 변화를 주시하고, 이에 따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노멀 시대'에 펼쳐질 중국의 변화를 진단하고, 한국 경제의 진로를 고민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편집자]
◇ 고속성장 브레이크..왜 뉴노멀인가
뉴노멀 전략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목은 더뎌진 중국의 성장 속도다. 지난해 중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7.4%에 머물러 24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개혁개방 이후 35년간 연평균 10%에 육박하는 초고속 성장세와 비교하면 확연한 둔화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모든 정책수단을 거머쥔 중국 정부가 성장률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것부터 이례적이다. 아시아 외환위기 충격이 강타한 1998년 이후 16년만이다. 시진핑 지도부는 개혁개방 이래 신주단지 모시듯 해 온 '규모와 속도'를 폐기하고 성장 둔화를 수용했다. 그러면서 내세운 것이 바로 신창타이였다.
2014년 10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중국경제는 신창타이 시대에 진입했다"고 선언했고 그해 12월 공산당 중앙경제공작회의를 통해 뉴노멀은 중국 경제정책의 새로운 지향점으로 확정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구에서 태동한 뉴노멀을 6년후인 2014년 중국 상황에 맞춰 기민하게 끌어쓴 실용주의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경제규모 자체가 커지면서 7%대 중속(中速) 성장으로도 정부가 기대하는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도 뉴노멀 등장의 배경이 됐다.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투자유치에 목을 매던 지방정부도 성장보다 고용창출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성장은 고용을 위한 것"이라는 슬로건 아래 성장률 목표치에 유연성이 부여되고 있다. 내달 개최될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올해 성장률 목표는 7.0% 안팎으로 낮춰질 것으로 관측된다. 잠재성장률 수준인 5~6%대까지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시진핑의 뉴노멀, 성장 DNA 바꾼다
뉴노멀이 단순히 성장 둔화나 속도 조절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운영시스템의 효율을 높이고, 성장동력을 교체해 미래에 대비하겠다는 경제운용 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IT·첨단기술·신에너지 등 신흥산업 육성과 과잉 공급 구조조정으로 산업구도를 재편하고, 내수시장과 서비스업을 키워 기존의 수출·투자 주도형 경제시스템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경제와 시장, 산업과 관련된 제도 정비도 포함된다. 정치·사회 분야의 뉴노멀로 불리는 '의법치국(依法治國)' 기조에는 부패 척결외에 법제도 정비를 통해 시장 불투명성을 줄이고, 이를 민생안정으로 연결시키겠다는 복안이 담겨있다.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방치돼 온 적폐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고육지책으로 택한 수정성장 전략일 수도 있다. 과잉투자와 생산, 빈부 및 도농간 격차, 환경오염, 지방정부 부채 등은 경제성장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증상이 심각하다. 중국 경제 경착륙이나 비관론의 근거가 되는 지점들이기도 하다. 저임금 노동력 감소와 저축률 하락 등으로 잠재성장률 하락이 우려된다는 점도 패러다임 전환을 촉발시킨 요인중 하나다.
그 출발점이 어디건, 뉴노멀은 과감한 체질변화 시도이며 주목해야 할 방향전환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2015년은 중국 뉴노멀 시대의 원년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불어닥치고 있는 뉴노멀의 신 조류는 시진핑 시대의 화두로 자리매김했다. 당권과 군권을 모두 장악하고 사정의 칼자루까지 잡고 있는 시진핑 주석은 뉴노멀을 통해 정치적 지지기반을 확장해가고 있다. 오는 2021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의 국가 목표인 샤오캉(小康·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단계) 사회 완성까지 안정과 개혁을 병행하는 기조는 이어질 공산이 크다.
◇ 중국의 변신..한국의 선택은
우리 경제에 미칠 파급력은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중국을 제조공장 삼아, 혹은 내수시장으로 여기며 20년 넘게 대중국 의존적 성장을 지속해 온 게 한국 경제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이 수출중심 정상전략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은 최대수출 시장인 대중국 거래를 통한 무역흑자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상황은 빠르게 바뀌는 중이다. 중국 위협론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제조업은 우리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모바일과 전자상거래, 핀테크 등 IT와 첨단기술 융합 분야는 중국 기업들이 대륙을 벗어나 글로벌 강자로 부상했다. 뉴노멀은 경제와 시장의 체질 변화를 통해 중국의 경쟁력을 부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양국 경제관계도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한중 FTA(자유무역협정)의 실질적 타결에 이어 원화-위안화 직거래 시장 개설로 우리 경제는 실물과 금융, 양면에서 중국 영향권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상하이 증시와 홍콩 증시의 교차거래를 허용하는 후강퉁 제도 시행으로 중국 자본시장 투자 문호가 열렸고, 개방의 폭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밀려드는 중국 관광객들은 소비·유통 시장을 바꿔놨고, 차이나 머니는 주식·채권·부동산에서부터 기업 M&A(인수합병) 분야에 이르기까서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국은 올해를 기점으로 새로운 길로 매진할 태세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남은 건 도태다. 뉴노멀로 촉발된 중국 산업과 시장의 재편, 비즈니스 및 투자 여건 변화를 어떻게 활용하고, 대응하느냐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시진핑 체제하에서 일어날 향후 10년간 중국의 변화는 한국의 미래를 바꿔놓을 수 있다. 뉴노멀 시대의 중국, 우리 경제가 직면한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즈니스워치는 3월5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한중 양국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뉴노멀 시대의 중국'을 심층 분석·전망하는 국제경제 세미나를 개최한다.
한국측에서는 정영록 서울대 교수, 박한진 코트라 중국사업단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지만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남수중 공주대 교수 등이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뉴노멀 시대를 맞는 한국 경제와 산업, 자본시장 분야에서의 대응 전략을 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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