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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대한항공에 공개서한…다음 카드는

  • 2018.06.06(수) 11:28

답변시한 열흘... 형식적 답변시 연금도 고민
경영참여행위 부담으로 중점관리 선정 등 카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앞당겨 구체화할 듯


국민연금이 한진그룹 총수일가 갑질사태와 관련 해결방안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5일 대한항공에 발송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 12.45%를 보유한 2대주주다. 앞서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도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고 한진그룹에 효과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에 공개서한을 발송하는 주주권 행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연스레 국민연금의 다음 카드에 관심이 모아진다.

◇ 답변기한 열흘…경영진 비공개면담도 요청


국민연금은 조인식 기금운용본부장(CIO) 직무대리 명의의 공개서한에서 "최근 귀사 경영진과 관련한 여러 국가기관의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대한항공에 대한 신뢰성 및 기업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사료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주주로서 기금의 장기 수익성 제고를 위해 해당 사안에 대한 명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실질적인 해결방안에 대한 귀사의 입장을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청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상기 사항에 대한 입장과 그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요청하며 귀사를 대표할 수 있는 경영진 및 사외이사와의 비공개 면담을 요청하니 오는 15일까지 회신해 달라"고 요구했다. 

 

◇ 형식적 답변이라면 다음 카드 고민해야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에 보낸 공개서한의 수신자로 '주식회사 대한항공 대표이사'를 지목했다. 대한항공의 대표이사는 조양호 회장, 조원태 사장, 우기홍 부사장 3명이다. 이 가운데 경영전략본부장을 맡고 있는 우기홍 부사장을 제외한 두 명은 이번 갑질사태와 직접 관련이 있는 총수일가이며 특히 조원태 사장은 인하대 부정편입 의혹으로 교육부 조사를 받는 당사자이다.


국민연금이 보낸 공개서한은 특정인을 지정하지 않고 회사의 대표이사에 보낸 것이어서 세명 중 누가 답변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공개서한에서 ‘회사를 대표할 수 있는 경영진’과의 대화를 요구했다.


따라서 이번 갑질사태와 무관한 전문경영인이 공개서한에 답변하거나 면담에 응한다면 내용을 떠나 무책임하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답변 내용도 관건이다. 대표성을 띤 인물이나 회사차원의 답변이라도 내용이 형식적일 경우 국민연금은 다음 수순을 고민해야한다.

 

조양호 회장은 이미 지난 4월22일 사과문을 통해 "대한항공에 전문경영인 부회장직을 신설해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를 보임하고, 그룹 차원에서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강화하고 특히 외부인사를 포함한 준법위원회를 구성해 유사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사과문 발표는 되레 한진그룹 사태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면서 이후 다수의 국가기관은 물론 직원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지난 4월의 조 회장 사과문을 반복하는 수준의 답변을 듣게 된다면 사상 첫 공개서한이라는 카드를 내고서도 달라진 것 없는 상황을 접하게 되는 것이고 자연스레 다음 카드를 논의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5일 대한항공에 보낸 공개서한.


◇ 경영참여 논란 의식한 공개서한의 신중한 문구

국민연금은 5일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명의의 보도자료와 기금운용본부 명의의 '공개서한'에서 모두 일관되게 경영참여행위가 아님을 강조했다. 이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둘러싼 세간의 의구심을 의식한 것이기도 하지만 현행 규정상 국민연금이 그 이상의 무엇을 실행하기 위해선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은 현재 12.45%의 대한항공 지분과 11.81%의 한진칼 지분을 단순투자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배당확대를 요구하거나 주주총회 안건에 찬성·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자본시장법상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행위가 아니다. 


이번처럼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우려사항을 전달하거나 서한을 발송하는 행위는 문구에 따라 경영참여로도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은 5일 두 차례의 공개문서를 통해 대책 마련과 해결방안을 촉구했지만, 자신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이나 해결방안을 요구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예컨대 조양호 회장 일가가 모두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식의 표현은 없었다.


아울러 대책마련을 요구하면서도 만약 회사 측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문구도 없다. 특정사안 관철을 요구하면서 회사 측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력행사에 나서겠다는 행동은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 행위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분보유목적을 단순투자가 아닌 경영참여로 바꿔야한다. 유례없는 일이다.

◇ 중점관리기업 지정.. 스튜어드십코드 앞당길 듯


국민연금이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지분보유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전격 변경한다면 사용할 카드는 다양하다. 임원 선·해임, 임시주주총회 소집 요구, 위임장 권유 등을 통해 2대주주 지위에서 다른 주주들과 손을 잡고 강도 높은 주주권 행사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순은 공개서한과는 차원이 다른 사회적 합의와 고도의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기금에서 유사 행보를 찾기도 쉽지 않아 사회적 논쟁을 야기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국민연금이 단순투자목적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다음 카드는 합법적인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 계열사를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하고 이사회 의사록을 공개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주주권익을 담보할 수 있는 위원회 설치 등을 담은 정관변경 요구도 가능하다. 이 역시 자본시장법상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계열사를 투자배제 기업으로 지정하고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도 있다. 국민연금과 어깨를 견주는 세계적인 연기금들도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이때는 소액주주 등 자본시장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마냥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국민연금이 한진그룹 사태를 계기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논의를 앞당겨 구체화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이미 올해 4월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관련, 오는 7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심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해도 당장 획기적인 수단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사 선·해임 같은 경영참여행위시 지분보유목적을 바꿔야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다만 국민연금이 지금보다 더 확고하고 투명한 의사결정시스템을 마련하고, 대한항공의 경영투명성을 요구할 수 있는 체계적인 가이드라인을 갖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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