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부지의 새 주인이 됐다. 하지만 부지 매입가격이 예상을 크게 웃돌아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한전 본사 부지 매각 입찰 결과, 현대차 컨소시엄(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낙찰금액은 10조5500억원으로 감정평가액(3조3466억원)의 3배 수준이다.
▲ 사진: 이명근 기자 qwe123@ |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한전부지에 대한 현대차의 베팅이 비이성적이라고 말한다. 우선 10조5500억원이라는 낙찰가는 인근 시세와 너무 동떨어졌다. 일례로 지난 2011년 삼성생명은 한전 부지와 인접한 한국감정원 부지를 3.3m²당 약 7000만원, 총 2328억원에 사들인 바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10조원이 넘는 부지 매입비와 건축비와 금융비용, 취득세, 서울시 기부채납 등을 감안하면 16조원이 넘는 무리한 배팅”이라며 "사옥 짓는데 16조원씩 투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한 건설사 개발담당자는 “그룹 실무자들이 향후 개발 이익과 땅값 프리미엄을 반영했다면 많아야 5조원 수준으로 가격을 제시했을 것”이라며 "10조원은 납득이 안 가는 금액이다"고 말했다.
한 감정평가사는 “과거에도 감정가의 2~3배 수준으로 낙찰가가 정해진 경우가 있었지만 이는 대부분 실수요가 아닌 투자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며 "이번 한전부지 낙찰가는 투자 목적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가격"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서의 평가도 냉담하다. 가치를 높이 평가해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매입해 성공한 경우가 드문 탓이다.
실례로 과거 삼성은 용산역세권개발 사업자 선정 때 철도정비창 부지(44만2000㎡) 땅값으로 8조원을 써낸 바 있다. 당시 감정가는 3조8000억원이었다. 용산역세권개발 사업은 경기 침체 여파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좌초됐다.
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업소득 환류세제’(기업에서 남아도는 자금을 가계로 스며들게 하기 위해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에 과세)를 피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강관우 올라FN대표는 “현대차가 향후 토지가치의 상승 가능성을 보고 높은 가격을 써냈을 수 있다”며 “다른 한편으론 사내유보금 과세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도한 유보금을 활용하겠다는 복안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현대차가 계열사를 수용할 수 있는 사옥을 짓기 위해 용적률을 높이려면 기부채납을 해야한다"며 "과연 마진이 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