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주택 분양시장 공급 조절의 칼자루를 쥐었다. 올 초부터 시작한 미분양 지역 보증심사 강화 등 시장 리스크 조율의 역할을 건설사들의 토지 매입 단계서 분양 직전까지 전방위로 확대했다. 주택 공급 관리를 전담하는 중책이다.
이런 역할은 HUG가 옛 대한주택보증 때부터 가졌던 '분양계약자 보호'라는 기능과는 다소 동떨어진다.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가 HUG에 민간 주택사업 제어 권한을 준 것이 논란 소지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강호인 국토부 장관은 지난 2월까지만 해도 "HUG의 분양보증 심사 강화는 정부의 주택 공급조절 정책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HUG의 주택 공급조절 기능을 공식화했다. 민간 주택전문가 출신 김선덕 HUG 사장이 작년부터 공사를 맡은 뒤 나타난 작지 않은 변화다.
▲ 김선덕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사진: HUG) |
정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방안 중 핵심인 '주택공급 관리'의 총 8가지 내용에서, HUG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보증 강화 ▲분양보증예비심사 ▲미분양 관리지역 확대 ▲분양보증 심사 강화 ▲중도금대출보증 요건 강화 등 총 5가지 역할을 맡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택지공급 조절을 제외하고, 국토부-지자체 간 인허가 조절 협력이나 청약시장 현장 점검 등이 구속력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HUG가 주택공급 관리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우선 국토교통부는 HUG를 통해 건설사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보증 신청시기를 조정키로 했다. PF대출보증은 주택업자가 대출받는 사업비의 50%까지 HUG가 원리금 상환을 책임지는 상품이다. 당초 주택공급 활성화를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업계획 승인을 받아야 PF대출보증을 신청할 수 있게되고, 수용 또는 매도청구 토지가 포함된 경우엔 이를 마쳐야 PF보증신청을 받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택지 매입이 어려워져 사업추진이 불확실한 곳에서는 사업 진행을 막을 수 있다. 당장 내달 1일 보증신청분부터 적용되는 업무다.
또 HUG는 택지매입 단계에서부터 분양보증 예비심사를 할 수 있는 기능을 부여받았다. 미분양이 우려가 있는 지역에서 사업 택지를 매입할 때 HUG의 예비심사를 미리 거치도록 한 것이다. 예비심사를 받지 않은 경우 HUG는 분양보증 본심사를 거부할 수 있게 됐다.
대상이 되는 '미분양 관리지역'은 ▲직전 3개월간 미분양 물량이 50% 이상 증가한 지역 ▲누적 미분양 주택수가 직전 1년간 미분양 발생 수의 2배 이상인 곳에 인허가 물량, 청약경쟁률 등 변수를 감안해 정해진다.
미분양 관리지역 요건도 이번에 추가로 확대 됐는데, 이렇게 관리지역으로 매월 정해진 지역에서는 분양 단계에서도 지역별(지점) 심사외에 본점 심사를 거쳐야 분양보증 승인도 받을 수 있다.
분양 단계에서는 이뿐 아니라 그동안 HUG가 주택업체들의 편의를 봐줬던 분양보증 제도들을 없애는 방식으로 관리가 강화된다. 앞으로는 요건이 맞지 않으면 분양보증을 아예 내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폐지되는 내용은 소유권 미확보 부지나 가압류·저당권 등 권리 제한이 있는 경우 담보 대신 일정 수수료를 받고 분양보증을 발급하는 '담보대용료' 제도, 업체별 보증한도를 초과해 보증 신청시 보증한도 초과분에 대해 가산 수수료를 받고 보증을 발급하는 '가산보증료' 제도다.
또 HUG는 분양보증 단계에서 시행사의 경영 안정성을 평가하는 업무도 맡는다. 기업재무구조개선절차(워크아웃) 중인 기업이나, 국세·지방세 체납업체, 분양보증 심사평점 55점 이하 등의 주택업체는 본사에서 분양보증을 심사키로 했다.
또 중도금대출(집단대출) 보증 요건을 강화해 HUG와 주택금융공사의 중도금보증 한도를 현재 100%에서 90%로 낮춰 운영키로 한 것과, HUG·주금공의 중도금 1인당 보증건수 한도를 총 2건으로 통합 관리하는 것도 HUG의 업무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공급 조절에 HUG가 개입하게 되는 업무는 모두 공사 내부 사규 개정을 통해 가능하다. 절차가 단순해 대부분 1개월 안팎이면 곧바로 시행할 수 있어 늦어도 10월1일부터 모두 적용이 시작된다.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은 전매제한 강화 등의 방식이 관련 법령개정 등의 절차에 최소 수 개월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시행 효과를 일찍 볼 수 있다는 게 정부로서 장점이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당장 PF대출보증 심사 요건이 까다로워지고, 택지 매입부터 심사를 받아야 한다면 시장 변화에 사업 타이밍을 맞추기가 까다로워질 것"이라며 "자금력이나 신용도가 낮은 중소건설사들은 아예 새로 사업 계획을 짜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로서는 현 정권에서 풀었던 규제를 다시 강화한다는 비판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산하기관인 공사가 보증 우발채무라는 경영 리스크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관련 업무를 더하거나 덜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HUG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서 '월권'이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HUG는 강남 개포주공3단지 재건축 '디에이치 아너힐즈'에 대해 고분양가를 이유로 분양보증을 반려해 보증기관이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섣불리 제어하기 어려운 민간업체의 주택공급을 선분양제도에서 필수인 분양보증 절차를 통해 제어하는 것은 정부로서는 묘수"라면서도 "하지만 명확한 기준 없이 민간 사업에 통제가 이뤄지면 건설업체들의 반발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