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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싹 달라진 '건설 공익재단' 약속

  • 2016.10.04(화) 15:25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 설립선언 1년
출연금 목표액의 2%뿐..일회성 쇼였나?

"보면 아시잖아요. 이래저래 뜯기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헤아려 볼까요? 매 분기 목표한 경영실적을 맞추면서 때마다 내라는 돈까지 꼬박꼬박 다 챙겨내려면 '특별 충당금'이라도 쌓아둬야 할 판입니다."(한 대형건설사 임원)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얘기가 나오면서 건설사들 목소리가 커졌다. 1년여 전 업계가 기금 총 2000억원을 갹출해 만들기로 했던 재단법인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 관련, 출연액이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지난달 26일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나왔을 때다.

 

언뜻 설득력 있는 핑계거리다. 미르재단 등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가 출연해 만든 문화산업 관련 재단인데, 청와대가 대기업들의 팔목을 비틀어 기금을 짜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건설업계는 앞선 작년 8월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 설립을 약속했다.

 

▲ 2015년 12월 (앞줄 오른쪽 세번째 부터 왼쪽으로)이상대 전 삼성물산 부회장, 최삼규 대한건설협회 회장,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 등이 건설산업 사회공헌재단 발기인 총회를 마치고 박수를 치고 있다.(사진: 대한건설협회)

 

두 재단 출연이 겹치는 삼성물산·GS건설·대림산업 등 3개 건설사는 각각 15억원·5억9000만원(1억9000만원)·6억원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납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건설공헌재단에 약정한 금액은 각각 150억원씩인데 실제 낸 금액은 각각 10억원·3억원·3억원에 그친다.

 

70여 건설사의 건설공헌재단 출연 약속은 과거 담합으로 인한 영업 제재(입찰 참가 제한)를 정부가 풀어준 데 대한 '면죄부'와 같다. 하지만 지금껏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에 납부된 건설업계 실제 출연금은 목표액의 2.35%에 불과한 47억원에 불과하다.

  

요즘 들어 유독 건설사들은 애초 약정한 납부 금액을 선뜻 내지 못하고 있는 게 정부 때문이라고 한다. 자꾸 명목을 만들어 '더 내놓으라'고 한다는 거다. 전에는 다른 핑계를 댔다. ▲과징금 규모가 크고(1조2900억원) ▲관련 손해배상 소송 진행 중인 데다 ▲경영 사정도 좋지 않다는 것이 었다.

 

하지만 건설업계가 사회공헌재단을 만들겠다고 약속을 내놓기 전, 다시 말해 '입찰참가 제한 해제'라는 일종의 사면과 기금 출연 약속을 맞바꾸기 전, 그 일련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지금 건설사들의 핑계들은 썩 와닿지 않는다.

 

▲ 지난 2014년 7월 공정경쟁과 준법경영 실천을 다짐하며 고개 숙인 대형건설사 대표들. 사진 왼쪽부터 ㈜한양 윤영구 사장, 계룡건설산업 이시구 회장, 한진중공업 이만영 사장, 동부건설 이순병 부회장, 한국건설경영협회 허명수 회장(GS건설 부회장), 한국건설경영협회 김세현 상근부회장, 현대건설 정수현 사장, 대우건설 박영식 사장, 대림산업 김동수 사장, 두산건설 오병삼 부사장, 코오롱글로벌 윤창운 사장, 경남기업 장해남 사장(사진: 한국건설경영협회)

  

건설사들은 면죄부를 사기까지 여러 번 머리를 조아렸다. 재작년 7월 건설 최고경영자들 모임인 한국건설경영협회는 '건설업계를 살려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직설적 제목의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당시 이 협회 회장인 허명수 GS건설 부회장을 비롯해 현대건설 정수현 사장, 대우건설 박영식 사장, 대림산업 김동수 사장 등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대형 건설사 대표들이 한 데 모여 고개를 숙였다.

 

대한건설협회 등 건설산업 이익단체 수장들도 "담함 행위에 대한 제재가 과하다"며 "그 중에서도 공공공사 입찰참가 제한은 사형선고와도 같다"고 아우성쳤다. 건설수주 중 공공부문이 37.9%를 차지하는데 이를 막는 건 죽으라는 소리나 같다고 했다.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입찰 제한만은 풀어달라는 거였다.

 

전경련도 거들었다. 공공공사 입찰참가제한 제도 때문에 60여개 건설사가 많게는 16년3개월(단순 합산 기준)의 입찰 제한을 받았고, 주요 6개사만 따져도 매출 손실액이 최소 9조원이라는 분석도 작년 3월 내놨다. 이들이 공공공사에 참여하지 못하면 "국책사업에도 차질이 불거질 것"이라는 으름장(?)도 함께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이었다. 정부가 업계의 숙원인 입찰제한 해제를 작년 광복 70주년 특별사면 내용에 넣었고, 그 직후 건설사들은 '건설업계 자정 결의 및 사회공헌사업 선포식'을 열었다. 그중 핵심 내용이 2000억원 규모의 공익재단의 연내 출범이었다.

 

▲ 2015년 8월19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업계 공정경쟁과 자정실천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등 건설사 대표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사진: 대한건설협회)

 

건설사들은 애초 기금 출연을 약속한 것이 '자의반 타의반'이었다고도 한다. 온전히 업계의 자발적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제재를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작된 일이란 얘기다. 출연 규모가 무리하게 배당돼 파행은 애초 예견된 것이라는 변명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로 해명이 될까. 요즘 건설업계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기금 출연도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다고 한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으니 나몰라라 하는 식의 태도다. 국민은 들러리로 세워두고 기업과 정부가 서로 원하는 것만 주고받은 '쇼'였나.

 

그렇다면 건설업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회복은 요원하다. 담합뿐 아니라 비자금 조성, 물리력을 동원한 강제 개발, 고분양가 등 과거부터 쌓여온 구태로 인해 건설업계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이런저런 핑계만 대면서 약속을 미루는 태도는 국민을 '호구'로 보는 거나 다름없다. 요즘 건설사들 주 수입원인 아파트 사업의 수요자가 바로 국민인 걸 감안하면, 여러 면에서 국민을 요샛말로 '호갱'으로 보나 싶다.

 

건설사들은 이제라도 능력에 맞게 각 사별 출연 계획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이에 맞게 철저히 집행해야 한다. 내준 것이 있는 정부 역시 제대로 관리감독 해야한다. 둘만의 '쇼'가 아니었단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달라.

 

■ 해제 전 주요 건설사 담합 관련 입찰참여 제재

#현대건설: 4대강, 광주총인시설, 인천지하철, 대구지하철, 경인운하, 부산지하철, 호남고속철(최저가) - 7건 (최장 14년)
#삼성물산: 4대강, 영주다목적댐, 인천지하철, 대구지하철, 경인운하, 호남고속철(최저가, TK/대안) - 6건 (최장 12년)
#대우건설: 4대강, 영주다목적댐, 인천지하철, 대구지하철, 경인운하, 부산지하철, 김포한강신도시 크린센터, 이천시 공공하수도, 호남고속철(최저가, TK/대안) - 9건 (최장 18년)
#대림산업: 4대강, 광주총인시설, 인천지하철, 대구지하철, 경인운하, 이천시 공공하수도, 호남고속철(최저가) - 7건 (최장 14년)
#포스코건설: 4대강, 인천지하철, 공촌하수처리, 대구지하철, 현풍하수처리, 호남고속철도(최저가) - 6건 (최장 12년)
#GS건설: 4대강, 인천지하철, 대구지하철, 경인운하, 김포한강신도시 크린센터, 호남고속철(최저가, TK/대안) - 6건 (최장 12년)
#SK건설: 4대강, 인천지하철, 대구지하철, 경인운하, 부산지하철, 호남고속철(최저가, TK/대안) - 6건 (최장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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