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건설사들이 유독 새로운 경영체제로의 재편 등 크고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건설 등기임원에서 빠지기로 한 점은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한때 승계 이슈와 연계되면서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이보다는 정 회장(80세)이 고령인 점과 현대건설 자율경영에 힘을 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외에도 건설사 별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 지주회사 전환 등 새로운 실험에 나서고 있다.
현대건설이 오는 29일 주총을 여는 것을 제외하면 22일에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 대림산업, 23일에 GS건설, 대우건설, 현대산업개발 등으로 주총일이 몰려 있다.
◇ 6년간 '애정했던 현대건설' 떠나는 정몽구 회장 왜?
현대건설은 이번 주총에서 박동욱 현대건설 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처리한다. 박동욱 사장은 지난 1월 그룹 인사에서 현대건설 사장으로 임명됐다.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공식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된다.
아울러 기타비상무이사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김용환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6년 만에 현대건설 등기임원 자리를 내놓는다. 정 회장과 최측근인 김용환 부회장은 지난 2011년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과의 치열한 다툼 끝에 현대건설을 거머쥔 후 2012년부터 나란히 등기임원에 올랐다. 현재까지 현대건설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전에서도 드러났듯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에 대한 정몽구 회장의 애착이 남달랐던 점을 생각하면 지배구조의 큰 변화로 인식되는 대목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그동안 그룹 차원의 책임경영을 강조했다면 지금은 계열사의 자율경영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과 함께 이원우 현대건설 부사장(플랜트사업본부장)과 윤여성 현대건설 전무(재경본부장)가 사내이사 후보로 오른 점도 주목받고 있다.
정몽구 회장과 김용환 부회장이 빠진 자리를 사내이사로 채우는 동시에 부사장 등을 제치고 윤 전무를 등기임원으로 선임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윤 전무는 박 사장이 맡던 재경본부장을 이어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사업본부장과 CFO를 나란히 등기임원으로 선임해 사업확대와 내실성장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삼성물산은 22일 주총부터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한다. 지난 4년간 대표이사 사장(건설부문장)과 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최치훈 사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이영호 건설부문장이 대표이사 사장을 맡는다. 이 사장은 재무통으로 올해 1월 그룹 인사에서 건설부문장 사장 자리에 올랐다. 새로운 의사결정 체제로의 안착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삼성물산은 또 이번 주총에서 이사회의 전문성과 다양성 제고를 위해 글로벌 기업인 GE의 최고생산성책임자(CPO)를 역임한 필립 코쉐를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 지주사 전환 현대산업개발, '새술은 새부대'
현대산업개발은 오는 5월 1일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주총에서 분할계획서 승인 안건을 결의한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연말 지주회사인 'HDC(가칭, 존속법인)'와 사업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가칭, 신설법인)'로 조직을 분할하는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와 사업기능을 분리해 HDC가 자회사 관리와 부동산임대사업 등을 맡고, HDC현대산업개발은 주택·건축·인프라 부문 사업에 집중한다.
이를 위해 사외이사 진용도 새로 꾸린다. 박용석 사외이사(광장 변호사,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재선임되고, 김진오 동인 변호사(전 창원지법 부장판사), 이방주 JR투자운용 회장(전 한국주택협회장), 신제윤 태평양 고문(전 금융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한다. 새로 선임되는 사외이사는 지주 출범 직후인 5월2일 임기를 시작한다.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될 유병규 전 산업연구원장은 지주회사 설립을 주도할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의 사외이사 영입도 눈길을 끈다. 유 부사장을 포함해 새로 선임되는 사내·사외이사 임기가 모두 1~2년인 반면 신 전 위원장만 3년이다.
신 전 위원장은 대통령비서실 국민경제비서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금융위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1차관 등을 거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지주회사 전환을 돕고 종합부동산·인프라 그룹 도약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쇄신, 금융과의 비즈니스 융합 등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우건설은 일상적인 수준의 안건만 처리한다. 현재 송문선 부사장(대표이사)이 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최근 모로코 사피발전소 손실 건으로 호반건설 매각이 무산된데 따른 책임론이 불거졌다. 산업은행 안팎에서 대우건설 신임 사장 선출절차에 돌입할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어 전반적인 경영진의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