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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계급사회]'안산다 vs 못산다' 전세도 전세 나름?

  • 2020.11.30(월) 15:31

치솟는 집값에 전세난까지 '이중고' 겪는 전·월세 세입자
종부세 회피·청약가점 확보 위한 자발적 세입자도 존재

#A씨는 서울에서 집을 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집값 뛰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전세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기존 계약이 끝나면 좀 더 넓은 전셋집으로 이사가려 했으나 임대차3법 등의 영향으로 전셋값이 오르면서 그마저도 포기했다. 

#B씨는 얼마든지 집을 살 능력이 되지만 20년째 강남에서 전·월세로 살고 있다. 무주택 자격을 유지하면서 청약 가점을 쌓아 '로또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서다. 게다가 종부세도 회피할 수 있으니 청약에 당첨될 때까지 집을 사지 않기로 했다. 

전세살이라고 다 같은 전세살이가 아니다. 자금이 부족해 집을 '못' 사는 세입자가 있는가 하면, 의도적으로 집을 '안' 사는 자발적 무주택자도 있다. 전자가 실수요자이자 서민이라면 후자는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나 다름없다. 

◇ '전셋값 따라가기도 힘드네'

정부가 24번 내놓은 부동산 대책의 칼날은 규제지역 고가·다주택자를 향했다가(2018년 9·13대책) 일반 지역으로까지 확대되고(2019년 12·16대책) 나중엔 유주택자(7·10대책)까지 옮겨갔다. 

실수요자이자 서민의 범주에 드는 건 '무주택자' 뿐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집값이 빠르게 치솟으며 서울 및 수도권 주요 지역에 집이 한 채만 있어도 자산 증식이 두드러진 반면 무주택자들의 내집 마련 꿈은 점점 멀어졌다. 

한국감정원 주간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이달 23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3년(2017년 11월27일) 만에 8.46% 상승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값은 9.96% 올랐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중위매매가격은 8억5696만원으로 '9억원' 문턱에 다다랐다. 2019년 11월만 해도 7억8467만원으로 8억원을 넘봤으나 1년 만에 9.2% 상승한 셈이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 한국감정원, 통계청으로부터 받은 '2016~2020년 가구주 연령대별 서울 아파트 PIR'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 PIR은 2016년말 11에서 2019년 말 15.2로 4.2 증가했다. 

PIR(Price to income ratio)은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로 연 가구 소득을 모두 주택 매입용으로 사용했을 때 걸리는 시간(년)을 의미한다. 서울 평균 가격의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 모든 소득을 모아야 하는 기간이 3년 만에 최소 4.2년 늘어났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39세 이하 가구주의 PIR은 현 정부 들어 해마다 1년가량 증가해 2030세대의 내 집 마련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나타냈다. 

여기에 최근엔 임대차3법 등의 영향으로 전세난이 심화하자 '전세 사수' 마저 힘들어졌다.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아파트 전월세 건래 건수는 임대차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이 통과된 지난 8월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  

11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건수는 7041건으로 전년 동기(1만6273건)의 56.7% 감소했는데, 특히 전세 거래 건수가 4243건으로 전년 동월(1만1964건) 대비 64.5% 크게 줄었다. 

전세 매물 자체가 귀해지자 가격이 뛰었다. 한국감정원 기준 아파트 중위전세가격은 지난달 4억4246만원으로 1년 전(4억1585만원)에 비해 6.4% 상승했다.

◇ 서민 탈을 쓴 부자?

하지만 세입자들 중에서도 '서민'으로 보기 힘든 부류가 있다. 자발적인 무주택자들이다. 

대표적인 이유가 종부세 부담 때문이다.

매년 공시가격이 대폭 상승하면서 일종의 '부자세'로 불리는 종부세 부과기준인 '공시가격 9억원' 대상 주택들이 늘고 있다.  올해 종부세 고지 대상자는 66만7000명으로 작년보다 약 15만명 증가하고 세액은 1조8148억원으로 작년보다 5450억원(42.9%) 늘었다.

앞으로도 종부세 부담은 점점 더 커질 전망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시 구별 공동주택 보유세 변화 분석 보고서'를 통해 현재 종부세 납부대상자가 포진한 자치구는 강남구·서초구뿐이지만 2025년에는 서울시 내 25개 모든 자치구가 부과 대상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평균 보유세 부담(전용 85㎡ 공동주택 기준)은 182만원이지만 오는 2025년에는 4.9배 불어난 897만원까지 올라간다. 2030년에는 보유세 부담이 올해 대비 25.1배 급증한 4577만원까지 증가한다.

하지만 전세보증금의 경우 세금 부과율이 낮아 매매보다 부담이 훨씬 덜하다. 2주택자까지는 월세 수입만, 부부합산 3주택 보유자는 합계가 3억원 넘는 전세 보증금에 대해서만 과세된다. 자금 여력이 충분한 일부 재력가가 고가 주택에 전세로 들어가 살거나 수백만원의 월세를 내며 세입자 생활을 하는 이유다. 

청약을 노리고 무주택 자격을 유지하는 이들도 있다. 

분양가 상한제 등 규제 강화로 수도권 분양 공백이 이어지면서 청약 경쟁이 심해지자 무주택 자격을 유지해 청약 가점을 쌓기 위해서다. 특히 정부의 분양가 규제가 심해질수록 '당첨만 되면 로또'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시세차익을 노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청약홈에 따르면 10~11월중 수도권 주요 지역에서 분양한 아파트만 봐도 평균 청약 1순위 당첨 가점은 60~69점대다. 과천 지식정보타운에선 청약 만점자가 나왔을 정도다. 이에 청약 시장에선 가점이 70점은 넘어야 '안정권'으로 보는 분위기다. 무주택기간 15년 이상 만점(32점), 청약통장 가입기간 15년 이상 만점(17점) 하고도 부양 가족이 4명(25점)은 있어야 청약 가점이 70점을 넘는다.

이에 집을 살 수 있는 이들도 '로또 청약'을 노리고 무주택자 자격을 유지하며 청약 통장을 아끼는 모습이다. 실제로 강남을 비롯해 수도권 주요지역의 견본주택 현장에선 대출 없이 분양가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자금이 충분하지만 전세살이를 하며 기회를 노리는 세입자들을 종종 만났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주택자 중에서도 부자와 서민 이분법적인 차원을 넘어 영끌이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고, 전세 세입자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빌라에 사는 사람 등으로 나뉜다"며 "집값은 계속 오르는데 공급이 부족하니 사회적 양극화가 더 두드러지고 부동산 계급은 점점 더 세분화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다고 이제와서 종부세율을 내릴 수도 없고 청약 요건에 소득 기준을 넣으면 형평성에서 어긋나니 손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근본적인 해법인 주택 공급 확대 등에 신속하고 일관적인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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