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엔지니어링이 지난해 코로나19에도 질주했다. 4분기에 대형 수주 '잭팟'을 터뜨리며 건설사 전체 해외수주액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수주에서 성과를 냈다. FEED(기본설계)·EPC(설계·조달·시공) 연계 수주 전략이 빛을 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적도 선방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감소했지만 매출은 '화공' 위주로 성장세를 보였다. 영업이익 6000억~7000억원대(2011~2012년)를 일궜던 전성기를 되찾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수주를 기반으로 'V자 반등'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유의미해 보인다.
◇ 코로나19 무색…수주곳간 2012년 이후 최대
삼성엔지니어링이 발표한 2020년 잠정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신규 수주액은 9조6009억원으로 전년(7조483억원) 대비 36.2% 증가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3분기까지만 해도 분기별 수주액이 1조원 안팎에 불과해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4분기에 6조6310억원(연간 수주액의 70%)의 수주 잭팟을 터뜨리며 분위기를 뒤집었다.
회사 측은 "FEED(기본설계) 등 선행 작업에 기반한 EPC(설계·조달·시공) 연계수주 성과"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성과가 멕시코 도스보카스 정유 프로젝트 수주다. 총 4조5000억원 규모로 단일 프로젝트로는 삼성엔지니어링 창사 이래 최대 수주다.
FEED는 플랜트의 전체적인 틀을 정하는 작업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은 FEED 수행 이후 EPC로 전환하는 선행 단계 수주를 공략해 왔다. 지난 2019년 멕시코 도스보카스 정유 프로젝트의 FEED를 수주해 수행했고 이후 상세설계, 주요기기 발주, 현장 기초공사 등을 선제적으로 진행해 왔다. 발주처가 1단계 사업의 성공적 수행에 대해 만족하면서 2단계 수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외에도 말레이시아 사라왁 메탄올 프로젝트(1조2000억원), 헝가리 전지박 플랜트(1500억원), 국내 바이오 플랜트(7799억원) 등을 수주하며 수주 잔고를 약 16조4000억원까지 쌓았다. 이는 2012년(19조3647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수주 잔고는 2016년 8조1582억원까지 곤두박질쳤다가 차츰 회복되면서 4년 만에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다른 건설사에 비해서도 눈에 띄는 성과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연간 수주액은 총 351억3068달러(약 39조2620억원)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이 그중 24.5%를 차지했다.
◇ 화공도 '쑥쑥'인데…목표 보수적인 이유는
지난해 영업이익은 3510억원으로 전년도(3855억원) 대비 8.9% 감소했다. 다만 연간 목표치(3400억원)를 넘어서며 선방했다는 평가다.
매출액은 6조7251억원으로 전년(6조3679억원, 연간 목표치 6조원) 대비 5.6% 증가했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모듈공법 적용 등 사업수행혁신으로 현장작업 리스크를 최소화해 큰 차질없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다"며 "아울러 전사적인 경영혁신과 원가절감 노력으로 수익성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모듈공법은 플랜트 건설에 필요한 장치와 설비 등을 미리 제작해서 현장에선 설치만 하는 방식이다. 기후, 장비 및 인력 상황, 발주처의 요구사항 등으로 가변적인 현장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리스크 감소, 품질 개선, 공기 단축 등의 장점이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2008년 모듈방식 도입 이후 다수의 프로젝트에 적용했고 향후 전 프로젝트에 가능한 부분을 확대할 계획이다.
사업부문별로는 화공부문의 꾸준한 성장세가 눈에 띈다.
화공부문 매출은 2017년 2조1104억원, 2018년 2조1648억원, 2019년 2조8782억원, 2020년 3조3476억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화공 플랜트 전문가'인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이 취임 이후 화공플랜트 분야에 수주 역량을 집중한 결과가 화공부문의 외형 성장으로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최 사장은 2017년 취임 초부터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해 양보다 질(화공 플랜트) 위주로 수주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21년 경영전망공시를 통해 수주 6조원, 매출 6조8000억원, 영업이익 3900억원의 비교적 보수적인 목표를 잡았다.
올해 수익성 중심의 내실경영과 신사업(그린인프라·에너지최적화·기술혁신솔루션) 육성을 통해 중장기적 지속성장의 기반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조윤호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대외 환경 리스크를 적극 반영해 신규 수주 목표가 상당히 보수적"이라며 "다만 계열사 설비 투자 증가, 입찰 진행 중인 대형 프로젝트에서 좋은 소식이 들릴 경우 수주 목표가 상향 조정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