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국제업무지구(용산정비창) 부지에 최고 111층 랜드마크 건립 계획(2007년)→용산 캠프킴 부지에 최고 50층 빌딩 건립 계획(2015년)→용산역 주변을 관광·IT·문화·금융 거점 개발 계획(2018년)→용산정비창·캠프킴 부지에 1만3100가구의 공공주택 공급 계획(2020년)'
정부의 '오락가락' 개발 정책에 용산 주민들이 뿔났다.
용산국제업무도시 등 용산 개발(마스터플랜) 계획이 10년 넘게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애를 태우더니, 지난해 8·4대책 이후로는 공공주택 공급 계획으로 개발 방향이 바뀌면서 반발이 커졌다.
가뜩이나 서명운동 등 집단 행동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해오던 용산 주민들은 최근 '과천정부청사 주택공급계획 백지화'가 도화선이 되면서 반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국제업무도시에 공공주택 1만 가구?
최근 서울 용산구 주민 모임인 용산비상대책위원회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용산 개발 정상화'에 대한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용산구에 공공주택 계획 물량이 과도하게 몰려있다며 기존 개발안대로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용산정비창 부지는 지난 2006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한강르네상스' 계획의 핵심 프로젝트였다. 사업비 31조원을 투입해 서부이촌동과 철도정비창 부지를 통합개발하고 최고 620m의 111층 랜드마크 건물을 건립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부동산경기 침체와 자금난 등 악재가 겹치면서 사업이 좌초됐다.
2018년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여의도·용산 개발 마스터플랜' 구상을 내놓으며 다시 개발 기대감이 나왔으나 서울 집값이 과열되자 한 달 만에 계획이 무기한 보류됐다.
그리고 2년 만에 개발 계획은 공공주택 공급 계획으로 바뀌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용산정비창에 '미니 신도시'급인 8000가구를 공급하는 안을 내놨고 같은 해 8월엔 용적률을 높여 1만 가구로 공급 계획 물량을 늘렸다. 이는 정부가 계획한 서울 신규택지 개발 주택공급 물량 중 태릉골프장(1만 가구)와 함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용산 주민들은 서울 '알짜' 입지를 업무·상업지구가 아닌 공공임대가 포함된 주거지역으로 개발하는 것에 대해 반발해 왔다.
서울시는 용산정비창 개발에 대한 국제설계공모를 계획하는 등 마스터플랜을 재추진하면서도 공공주택 공급계획을 유지할 계획이어서 용산 주민들의 실망감이 커졌다.
더군다나 최근 과천정부청사의 주택공급 계획안(4000가구)이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자 용산 주민들은 서명운동 등 반발 수위를 높여가는 분위기다. 한 용산 주민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과천정부청사는 계획이 취소됐는데 용산은 그대로인 게 말이 되느냐"며 "서명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고 말했다.
용산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서울의 도시경쟁력 향상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용산정비창은 실리콘밸리와 같은 온전한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해달라"며 "용산정비창 내 1만 가구로는 절대 국제업무지구가 실현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역세권 청년주택까지…'우리한테 왜 그래'
용산 주민들은 용산정비창 부지 외에도 공공주택 물량이 용산구에 몰려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거 초고층 빌딩을 건립하고 복합상업지구로 개발하려던 용산 캠프킴 부지도 8·4대책을 통해 3100가구의 공공주택을 공급하기로 계획됐다.
용산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캠프킴 3100가구가 들어서면 용산공원의 확장성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교통지옥, 환경, 도시불균형 등의 문제를 우려했다.
역세권 청년주택 공급 물량도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용산구에는 한강로2가 역세권 청년주택 '용산 베르디움 프렌즈'(1086가구)와 원효로1가 역세권 청년주택(752가구)이 사업인가를 받은 상태다. 사업인가를 추진 중인 원효로3가(1052가구), 서계동(258가구), 나진상가 12·13동(600가구)까지 합하면 용산구에 역세권 청년주택만 총 3748가구에 달한다.
용산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용산구의 역세권 청년주택 규모가 최상위"라며 "특히 원효로3가의 경우 정비되지 않은 도로, 차선의 부족 등으로 교통혼잡도가 높다"며 과도한 역세권 청년주택 공급을 반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일각에선 용산 주민들의 반발이 심한 데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용산 개발을 추진했던 만큼 공공주택 공급 계획이 일부 조정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오 시장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 2월 "용산은 미군기지 이전과 용산정비창 부지 등 서울에서 활용 가능한 마지막 기회의 땅"이라며 "서울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 임대주택 공급 부지가 돼선 안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개발할 때 공공주택과 여러가지 업무 기능을 같이 넣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면서도 "다만 어떤 유형, 어떤 퀄리티의 주택을 짓느냐에 대해선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 갈등이 심해지면 사업 진행이 힘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율이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