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신규 분양 아파트는 청약 경쟁이 심해 서울 아파트의 진입 장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서울의 주택공급 확대가 시급한 상황에서 시장은 '민간 재건축이 답'이라고 보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4·7 보궐선거)이야말로 이같은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취임 후 일주일만에 재건축 규제를 풀겠다'던 오세훈 시장이 오히려 규제를 덧씌우면서 민간 재건축 시계가 멈췄다. 재건축 사업의 '대못 규제'인 안전진단 완화도 요원해 곳곳에서 재건축 단지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시장 되면 재건축 규제완화 한다며!
지난 4·7 보궐선거 이후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지 76일째지만 여전히 재건축 규제 완화가 제자리걸음이다.
오 시장은 후보시절부터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 정비사업 활성화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 때문에 시장의 기대감이 커지며 강남권 등 주요 지역에서 집값이 과열되자 오히려 '규제 강화' 조치부터 했다.
오 시장은 당선된 지 10여일 만에 토지거래허가구역 4곳을 추가 지정했다.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모여 있는 △압구정 아파트지구(24개 단지) △여의도 아파트지구 및 인근 단지(16개 단지) △목동 택지개발사업지구 △성수 전략정비구역 등이다. ▷관련기사: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 쓰고, '재건축 청신호'로 읽는다(4월21일)
이때만 해도 오 시장의 조치가 재건축을 예고한 셈이라며 호재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오 시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내놓은 '규제완화 방안'에서도 재건축이 쏙 빠지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달 9일 '주택시장 안정 및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한 정책간담회'에서는 오히려 정비사업 규제가 강화됐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주택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투기과열지구 내 조합원 지위 취득을 앞당겼다. 재건축은 기존 '조합설립인가 이후'에서 '안전진단 통과 이후'로, 재개발은 '관리처분인가 이후'에서 '정비구역 지정 후 시·도지사가 지정한 기준일 이후' 조합원 지위를 취득할 수 있게 됐다.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단지는 조합원 지위 취득이 불가하기 때문에 매매가 뚝 끊길 전망으로, 집주인들은 준공까지 최소 10년은 '몸테크' 해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관련기사: [집잇슈]'10년·15년?' 재건축 몸테크, 더 길어진다(6월11일)
중요한 건 '안전진단' 이라니까
오세훈 시장이 재건축 규제에 쉽게 손대지 못하는 이유는 '법 개정'이 필요해서다.
재개발 규제 사항은 서울시 조례 등으로 개선할 수 있지만 재건축 대못 규제로 꼽히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에 관한 법률) △분양가상한제(주택법) △안전진단(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등은 법 개정이 필요해 오 시장의 권한 밖이다.
개선 요구가 빗발치는 '안전진단 규제' 완화도 요원한 상황이다. 앞서 오세훈 시장이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를 건의하고 국토부에 관련 건의안(재건축 안전진단 평가항목 중 주거환경 비중 15%→30% 변경 등) 공문을 발송하는 등 규제 완화를 시도했지만 지난 6월 국토부는 여전히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만 할뿐이다.
현행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은 지난 2018년 2월 변경되면서 구조안전성 비중이 50%까지 상승했다. 시장에선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한 재건축 판정을 받기가 어려워졌다"며 기준 완화를 요구해왔다.
실제로 안전진단 기준이 강화된 후 양천구 목동9단지, 목동11단지, 강동구 고덕주공9단지 등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2차 안전진단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목동 아파트는 총 14개 단지, 2만6000가구 규모로 재건축이 이뤄지면 약 5만 가구의 주택공급이 가능해지지만 안전진단에 발목이 잡혀있다.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중 재건축 안전진단을 최종 통과한 곳은 6단지 한 곳뿐이다.
이같은 상황에 2차 안전진단 신청을 보류하는 단지가 나타나면서 민간재건축 사업이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노원구 상계주공6단지는 주요 단지들이 2차 안전진단에서 줄줄이 탈락하자 안전진단 신청을 잠정 보류했다. 상계6단지는 입주를 마친 상계8단지와 지난 1월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상계5단지에 이어 세 번째로 재건축 사업 속도가 빠른 곳이다.
전문가들은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선 민간 재건축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보고 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규제로 인해 억눌려 있던 상황에서 지자체장이 완화 의사를 표했을 때 시장에서 기대감이 반영되는건 당연한데 너무 빠른 시간 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서 시장을 경직시켰다"고 평가했다.
이어 "재건축은 첫 단계인 안전진단부터 인위적으로 사업 출발을 못하게 묶고 있는데, 이미 개발이익에 대한 환수장치(재초환)가 있기 때문에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빠른 시간 내 주택이 공급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시장이 더 빠르게 안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정부가 주택공급 방안으로 밀고 있는 공공주도 정비사업의 경우 시범사업 정도는 추진이 잘 되겠지만 서울에 주택공급을 좌우할 만큼의 사업진척은 어려울 것"이라며 "민간에서 적극 참여해 재개발·재건축을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은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상태여야만 재건축을 허가해주는 꼴"이라며 "주차장이 적다든지 배관이 낡았다든지 주거환경 노후도 등에 점수를 높여 재건축 사업 여부를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