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똘똘한 한 채'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보유세 등 부담이 커진 다주택자들이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못난이 집'을 팔면서 저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는데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자 또다시 상승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배제를 기회 삼아 집을 정리하는 한편, 향후 집값 상승이 기대되는 집 한 채에만 집중하려는 움직임 때문이죠.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똘똘한 한 채'에 집중하는 이유
저는 다주택자 규제와 함께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를 집값 상승의 원흉으로 보고 다주택자의 대출이나 청약을 막는 한편, 세금 부담을 강화해 매물 출회를 유도해 왔는데요.
그러자 부담을 느낀 다주택자들이 바로 저 '똘똘한 한 채'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가격 상승폭이 낮은 집들을 처분하고 향후 미래 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강남 등 주요 지역의 아파트나 재건축 추진 아파트 한 채만 남기는 식으로요.
정부가 뒤늦게 2019년 12·16대책에서 처음으로 '고가 1주택'까지 포괄하는 규제를 내놓긴 했는데요. 15억원 초과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고 1주택자의 양도세 비과세 혜택 기준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으로요.
그럼에도 고가 1주택을 향한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할 경우 보유세 부담이 훨씬 큰 데다, 개발 호재가 있거나 주요 지역에 집 한 채만 있어도 충분한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제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냐면요.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고위 공직자(1급 이상)들까지 결국 저한테 안착했습니다.
인사혁신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달 31일 관보를 통해 공개한 '2022년도 공직자 정기 재산변동 사항'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고위 공직자 18명 중 7명이 강남3구(서초·강남·송파)에 주택 한 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문재인 정부가 고위공직자 임명의 전제 조건으로 '다주택 해소'를 내건 만큼 주택을 처분하는 대신 고가 1주택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시장에선 이런 분위기가 올해도 이어질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다주택자의 세금 부담이 크기 때문이죠.▷관련기사:1주택자 '보유세 동결'…6월전 추가 완화 여지 남겼다(3월23일)
올해 공시가격 상승률은 17.22%로 지난해(19.05%)에 이어 2년 연속 급등세를 이어갔는데요. 1주택자에 대해선 재산세‧종부세 과표 산정 시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해 부담을 완화하기로 했지만 다주택자는 그대로 적용해 세금 폭탄을 맞게 됐습니다.
천장 뚫린 듯 '똘똘한 한채' 상승중
규제가 완화되면 제 인기도 금방 꺼질 줄 알았는데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규제 완화' 시그널이 강해지자 고가 1주택 선호 현상이 더 짙어졌거든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달 31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1년간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중저가 주택이 많은 지역은 매물이 늘어났지만 강남3구는 오히려 매물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 집계에 따르면 인수위가 다주택자 양도세 1년 완화를 공식화한 3월31일에 비해 4월3일 서울 중랑(2.2%), 노원(2%), 구로(1.6%) 등 전체 25개구 중 15구가 매물이 늘었는데요. 반면 강남(-3.3%), 서초(-2.5%), 송파(-1.4%) 등은 매물이 감소했습니다. ▷관련기사: "잔금은 나중에 주세요" 노도강 '팔자'…강남은 '뒷짐'(4월5일)
양도세가 무서워서 집을 팔지 못했던 다주택자들이 이때를 기회 삼아 못난이 매물을 시장에 던진 것으로 풀이되는데요. 재건축이나 강남 신축 등은 향후 재건축 규제 등이 풀리면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어 안고 가는 분위기입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세금뿐만 아니라 재건축, 분양가 등 부동산 시장에 전반적인 규제 완화를 약속한 바 있는데요. 이에 한동안 잠잠하던 집값이 다시 요동치고 있습니다. 저를 중심으로요.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대선 직후(3월10~28일) 서울 아파트 거래 현황'에 따르면 대선 직후, 직전 최고가 대비 집값이 가장 많이 상승한 상위 10개 서울 아파트 중 6곳은 재건축 단지가 밀집한 강남구(4곳)·서초구(2곳)로 나타났는데요.
이들 아파트의 대선 직후 평균 집값은 43억8300만원으로 직전 최고가 평균(34억5500만원) 대비 9억2800만원이나 상승한 수준입니다.
시장에선 당분간 저의 인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가격 반등, 집값 양극화, 임대차시장 불안 등이 우려되는 만큼 공급 확대 등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 5년간 주택가액보다 주택의 수를 규제한 결과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팔아서 현금화한 돈으로 더 비싼 똘똘한 한 채에 투자하게 됐다"며 "정권이 바뀌고 규제 완화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고가주택의 가격은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똘똘한 한채 집중하게 되면 다주택자들이 민간에서 뒷받침하던 임대차물량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주택의 다양한 공급, 공급 물량 확대 등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