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발표에 서울 외곽을 중심으로 호가를 낮춘 '급매'가 속출하고 있다. 양도세 중과 유예 혜택을 보면서 보유세 부담을 줄이려면 보유세 과세기준일인 6월 1일 전까지 잔금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일단 소유권을 이전하고 대금은 나중에 받겠다는 집주인까지 등장했다.
반면 강남권은 매도 문의만 늘었을 뿐, 실제 매물은 많지 않다는 전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추가적인 양도세 및 보유세 완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 내놨던 매물을 회수하면서 관망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돈은 나중에 주세요'…'일단 팔자'는 서울 외곽
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달 31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율을 1년간 한시 배제하겠다"고 밝힌 뒤 매도·매수 문의가 증가했다.
노원·도봉·강북 등 서울 외곽지역의 집주인들은 기존에 내놨던 매물의 호가를 낮추는 등 서둘러 집을 팔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급등한 탓에 다주택자들은 대폭 오른 보유세를 줄이려면 기산일인 6월1일 전 매도를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1주택자 보유세 작년 수준 유지…다주택자는 '폭탄'(3월23일)
급하게 매도하려다 보니 매수자가 세입자를 승계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이에 일단 소유권을 이전한 뒤 나중에 잔금을 받겠다는 집주인이 등장하기도 했다. 통상 계약 이후 잔금을 치르면서 소유권을 이전하지만 두달 내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매수자에게 부담인 탓이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양도세 완화 발표 이후 다주택자인 집주인들이 2000만원씩 호가를 낮췄다"며 "세입자의 전세 기간이 남아있어 실거주가 어렵거나, 5월 말까지 잔금을 받아야 해 시간에 쫓기는 집주인이 대부분 급매를 내놨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매물은 자금 마련이 어려운 경우 일단 소유권 이전 등기를 치고 잔금은 현금보관증을 작성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도봉구 창동의 중개업소 대표도 "세금 때문에 5월 말까지 잔금을 내야 하는 매물은 전반적으로 1000만~2000만원씩 호가를 낮췄다"며 "양도세 완화 정책이 실제 발표되면 매물이 많아질 거라는 생각에 집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미리 매도를 문의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노·도·강 팔고 여기로 모인다?…뒷짐 진 강남
반면 강남권 중개업소는 조용한 분위기다. 시세를 묻는 문의는 있지만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강남구 개포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양도세 완화 소식에 거래가 좀 늘까 기대했지만, 집주인들은 호가를 낮출 마음이 없고 매수인들은 급매만 찾는다"며 "오히려 내놨던 매물도 거두고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송파구 신천동의 중개업소 관계자는 "아직은 말만 있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쉽게 매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새 정부가 들어서면 보유세나 양도세 추가 완화 조치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더욱이 압구정·잠실·목동 등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매수자가 6개월 이내 직접 입주해야 주택을 매수할 수 있는 탓에 기존 세입자의 임차 기간이 많이 남은 경우 매도를 시도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서울의 아파트 매물은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5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매매 매물은 5만1744건으로, 양도세 완화 방침을 발표한 지난달 31일(5만1537건)보다 0.4% 늘었다.
강서구(3.3%)와 마포구(2.8%), 노원구(2.7%) 등에서 매물이 늘었다. 강남구(-3.3%)와 서초구(-2.5%)는 매물이 감소, 서울에서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양도세 중과를 배제하면 일부 매물 증가는 기대할 수 있지만, 다주택자들의 매도 이익이 똘똘한 한 채로 집중될 수 있다"며 "이들의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