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주목 받는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이 벼랑 끝에 서 있다. 분양가 문제에서 시작한 분양 지연이 공사비 갈등으로 번지면서 악화일로로 치닫는 모습이다.
둔춘주공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업단의 갈등은 지난 2019년 12월 전임 집행부가 가구수 증대, 물가 인상률 등을 반영해 기존 2조6708억원이던 공사비를 3조2294억원으로 5586억원 증액한 게 발단이 됐다.▷관련기사:[집잇슈]둔촌주공 초유의 공사중단…곳곳에서 곡소리(4월15일)
조합은 전임 집행부에서 체결한 계약이라며 공사비 증액의 무효를 주장하고 시공사업단은 적법한 절차였다며 '강대 강'으로 맞서고 있다. 시공사업단은 15일 공사를 중단하고, 조합은 16일 총회에서 공사비 증액 관련 의결을 취소하는 안건을 처리하며 맞불을 놓은 상태다.
둔촌주공의 앞날은 어떻게 될 지,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를 전망해봤다.
#시나리오1. 해피엔딩 '공사 재개'
현 상황에서 최선은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재개하는 것이다.
재건축 사업이 미뤄질수록 조합원들의 금융 비용 부담이 커지고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또한 공사비 증액이 불가피해 추가 갈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조합이나 시공사업단 모두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입장이지만 '극적 협상 타결'에 대해선 기대감을 열어두는 분위기다.
양측에 공사 재개 가능성을 묻자 둔촌주공 조합 관계자는 "협상과 대화를 기대하고 있긴 하다"고 답했다. 시공사업단도 "가능성이 없진 않다"고 말했다.
만약 양측이 극적으로 손을 잡고 공사를 재개한다면 '공사 정상화'까지는 최소 2개월이 걸린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협력 업체들이 장비를 일부 철수한 상태라 최소 2개월 뒤에는 무리 없이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둔촌주공의 공정률은 52%로 건물이 20~25층까지 올라간 상태다. 공사를 재개하면 동호수 추첨, 일반분양가 산출 작업 등도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빠르게 절차를 밟으면 연내 일반분양도 가늠해볼 수 있다.
다만 일반분양가 산정에서 또다시 잡음이 나올 수도 있다.
오랫동안 '분양가 줄다리기'를 한 둔촌주공 조합이 지자체에서 정한 분양가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미지수인 데다 분양가상한제 심사를 받기 위한 가산비 근거 자료는 시공단의 협조가 필요해 추후 협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나리오2. 계약도 해지 분양권도 해지?
둔촌주공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갈등의 골을 좁히지 못한다면 결국 시공사 계약 해지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둔촌주공 조합은 시공사업단이 10일 이상 공사중단을 할 경우 시공사 계약 해지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조합은 지난 14일 대의원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시공사업단 조건부 계약 해지 안건의 총회상정안'을 가결했다.
만약 오는25일까지 공사 재개를 하지 않는다면 조합은 별도 총회를 열어 계약해지 안건을 의결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사업의 장기간 표류가 예상된다.
조합원 수가 6000명에 달하는 만큼 총회에서 의견을 모으기 쉽지 않아 잡음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시공 계약 해지 안건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향후 '귀책 증명'에 시간이 오래 소요될 전망이다.
조합이 시공사 계약 해지를 하려면 법원에서 '시공사업 해지권'을 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법적으로 시공사업단에 공사중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법적 다툼으로 치닫으면서 문제 해결에 수년이 소요될 수 있다.
법원이 조합의 손을 들어주면 시공사업단은 금융비용 이자 등을 조합에 물어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투입된 공사비 약 1조7000억원은 조합이 시공사업단에 토해내야 한다.
법원이 시공사업단의 손을 들어줄 경우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시공사업단이 유치권을 행사해 건물의 권리를 통째로 넘겨받을 경우, 조합원 분양권이 사라질 수도 있다.
#시나리오3. 새 시공사 찾는다?
계약 해지까지 간다면 다음 단계는 새 시공사 선정이다. 여기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단지 규모가 1만2032가구로 공동시공이 불가피한데 현재 시공사업단에 포함된 대형 건설사 4곳이 빠지면 컨소시엄을 구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절반 이상 시공된 현장이라는 점도 문제다. 이전 시공사에서 진행한 공사에 대한 하자보수 책임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만약 공사 중단이 장기화돼 철골이 오래 노출될 경우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할 수도 있다.
'유치권'도 걸림돌이다. 시공사업단은 공사중단 후 시공사업단의 비용으로 투입한 모든 시설물, 협력사 손실분 등 일체의 손실 보존을 위해 법률적 권리를 행사할 것을 통보한 바 있다.
조합이 시공사를 교체하더라도 유치권 행사 중인 현장을 인계받으려면 기성 공사비(약 1조7000억원)를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진행된 공사분에 대한 내역을 산출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데다, 공사비 증액 변경 계약 무효 소송(조합이 3월21일 제기)이 진행중인 만큼 공사비 확정이 어렵다.
결국 소송 결과가 나와서 기성 공사비, 금융비용, 손해배상 등 지급이 마무리돼야 시공사 선정이 가능할 전망이다. 소송이 끝날 때쯤엔 물가 및 원자재값, 인건비 상승 등이 맞물리며 공사비가 더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2019년 9월 기준 둔촌주공의 3.3㎡(1평)당 공사비는 493만원이다.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서울 정비사업 평균 공사비는 2020년 528만원, 2021년 578만원으로 갈수록 오르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새 시공사 문제는 지금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며 "만약 계약 해지까지 간다면 유치권 관련해서도 해결해야 하고 최대한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