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100일에 맞추느라 그랬는지 서두른 느낌이 납니다. 정책을 내놓을 때는 구체적인 실행 시기나 파급 효과 등을 짜임새 있게 제시해야 하는데 또 미루는 모양새였죠. 이런 게 바로 전시행정 아닌가요?"
정부가 발표한 '8.16 주택공급 대책'에 대한 부동산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비판적입니다. 무엇보다 270만 가구라는 물량 제시만 있었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쏙 빠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에 대해 '평가할 게 없다'며 쓴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이를 에둘러서 '시장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요. 새 정부의 '주택공급 청사진'이라고 하기에는 알맹이가 빠졌다는 게 중론입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직후 "'정부 출범 100일' 안에 구체적인 주택공급 대책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이후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주택공급 혁신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공을 들이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처럼 다소 '엉성한' 대책을 내놓게 된 걸까요?
"재건축 완화 시장 자극 우려…면밀 모니터링"
지난 16일 국토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부처가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이라는 이름의 주택공급 대책을 발표했는데요. 당시 이번 방안을 마련한 부처 관계자들과 취재진의 질의응답 시간이 별도로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부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주목받은 건 바로 재건축 규제 완화 방안이었는데요. 이미 시장에서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안전진단 규제 완화가 대책에 포함되리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규제 완화에 대한 의지만 재확인한 채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에' 발표하겠다고 했습니다.▶관련 기사: [8.16 주택공급]재건축 대못 뽑는다…재초환·안전진단 '손질'(8월 16일)
국토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건 30년 넘는 아파트가 대거 풀려서 시장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선 방향만 밝힌 뒤, 향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연말까지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발표하겠다는 설명입니다.
결국 재건축 규제를 무작정 풀었다가는 최근 겨우 안정화하는 집값을 다시 자극할 수 있으니 시행 시기나 방법에 대해서는 시장의 흐름을 봐 가면서 '속도 조절'을 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1기 신도시 정비 사업과 관련한 마스터플랜을 오는 2024년까지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애초 이르면 올해 말에 계획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이번 대책에서 사실상 중장기 과제로 미룬 게 아니냐는 지적인데요.
정부 측은 이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1시 신도시 정비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일정을 정해서 추진하기는 어려운 사업이라는 겁니다. 특히 이 사업 역시 자칫 투기 수요 유입이나 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원 장관은 이와 관련, "주민 의견 수렴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일정을 정하기 어렵다"고 했고요. 심교언 주택공급혁신위원회 민간위원 대표 역시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고, 3기 신도시 등 주변 택지에 미칠 영향과 입법 과정의 난항 등을 감안해 일정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변수 많은 '도심 주택 공급'…계획대로 될까?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으면서 시장에 대한 영향이나 주민 여론 등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합니다. 재건축 규제 완화나 1기 신도시 정비 역시 이런 점들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하는 정책이기도 하고요. 정부도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다만 문제는 앞으로도 '고민'이 갈수록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민간 주도'의 '도심 위주' 주택 공급을 목표로 잡은 영향입니다. 이 영역의 사업들은 정부의 '계획'대로 추진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우선 국내 부동산 시장이 이제 막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흐름 속에서 무작정 재건축 규제를 확 풀거나 신도시 정비 계획을 획기적으로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시장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도심에서는 워낙 이해관계자들이 많은 데다가 지역 형평성 문제 등이 얽혀 '마음대로' 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실제 지난 정부에서 도심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며 의욕적으로 내놨던 2.4대책의 경우 지금까지 관련 사업이 지지부진한 모습입니다.
새 정부는 이 '도심 복합개발' 사업을 공공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인데요. 하지만 민간이냐 공공이냐보다는 도심이라는 특성상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사업 방식을 공공으로 하느냐 민간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기보다는 도심 개발의 경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인센티브를 줘도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민간 참여 '미지수'…일각에선 경착륙 우려도
민간이 주택 공급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도 미지수입니다. 송 대표는 "규제를 완화해준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물가인상이나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시장이 어려운 환경인 탓에 조합이나 시공사들이 적극적으로 임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 역시 "이번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와 시장 환경이 같이 맞아떨어져야 한다"며 "재건축의 경우 개발로 인한 기대 수익 등 사업성이 확보돼야만 민간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정부 관계자도 이런 점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는데요.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 대책에 구체적인 실행 일정이 없다는 지적과 관련 "정부가 규제 완화를 하더라도 민간이 (주택 공급을) 직접 하다 보니 구체적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는 여전히 집값 상승을 우려하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공급 과잉으로 인한 시장 침체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특히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15만 가구의 신규 택지 조성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3기 신도시에 이어 이른바 '4기 신도시'까지 더해지면 시장이 경착륙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관련 기사: [인사이드 스토리]4기 신도시를 만든다고요?(8월 18일)
원 장관은 이와 관련, 한 방송 인터뷰에서 "집값 경착륙은 금융충격이 올 정도 상황이 돼야 한다"며 이런 우려에 난색을 표했습니다. 집값이 2억~3억원 정도 떨어져도 경착륙의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인데요. 다만 그러면서도 "경제주체들이 적응할 수 있게 급격한 충격을 막고, 긍정적인 방향의 활성화 대책을 보완해서 발표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대규모 주택 공급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규제 완화에 대한 의지도 재차 밝혔고요. 하지만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답은 뒤로 미뤘습니다. 과연 앞으로 내놓을 세부 방안에는 어떤 해결책들이 담기게 될까요. 여러 이해관계와 우려를 아우를 수 있는 묘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