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고래가 떴다. 고래는 마치 바닷속을 유영하듯 지느러미와 꼬리의 움직임이 섬세했다. 드론 400대가 만든 형상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움직임이었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LX공사)가 지난달 29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띄운 드론은 정확한 위치 데이터를 통해 비행하며 하늘을 도화지 삼아 다양한 형상을 그려냈다.
LX공사는 이같은 드론 기술을 고도화해 2024년까지 전 국토의 공간 정보를 쌓아올린다는 목표다. 이렇게 모은 정보는 '디지털트윈 국토' 비전의 밑거름으로 삼아,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가상(디지털) 공간을 만들어 각종 도시 문제의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화려한 드론쇼, LX공사가 왜 거기서 나와?
이날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드론과 불꽃의 밤' 콘서트에선 드론쇼를 시작하자마자 곳곳에서 관객들의 환호가 터졌다.
400대의 드론이 그린 한반도 지도, 3D 지구, 고래 등의 형상은 마치 빔프로젝터로 스크린에 영상을 쏜 것처럼 섬세하게 연출됐다. 관객들은 단지 드론 비행만으로 이들 모두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고광훈 LX공사 모빌리티융합부 과장은 다음날(9월 30일) 국토부 기자단에 드론활용체계 구축사업 현황, LX디지털트윈 플랫폼 등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LX공사는 국내서 드론을 가장 많이 날리고 있는 기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LX공사는 지난 2015년부터 드론을 이용해 국토의 정보를 취득하고 디지털트윈 데이터를 만드는 사업을 추진 중으로 현재 드론 90여대, 조종자 총 345명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엔 현장에 나가서 기계 등을 이용해 직접 측량해 시간이 오래 걸렸으나, 드론을 이용하면 더 짧은 시간 내에 더 많은 범위를 측량할 수 있다.
지적재 조사의 경우 재조사지구 선정 및 주민설명회, 성과 검증까지 드론영상을 활용해 시간과 비용을 16% 이상 줄일 수 있다. 도로, 철도, 하천 등 국가인프라 관리에 드론 활용을 지원하면 조사 비용 50% 절감, 소요기간 4분의1 단축, 운영가능일수 3배 확보가 가능하다.
드론 활용 시 데이터의 정확도도 더 높았다. 최대한 LX공사 디지털트윈처 대리는 "LX공사의 드론 영상은 5cm급 이상의 정확도로 포털사이트에서 제공되는 항공영상과 비교하면 해상도, 위치 정확도 등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LX공사는 드론 기능 고도화, 국가 정책사업 참여, 드론맵 구축 등을 통해 드론활용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LX 드론맵은 전국을 대상으로 드론을 이용해 LX 자체적으로 생성한 모든 산출물로, 민간협업을 통해 2024년까지 전국토의 맵을 구축한다는 목표다.
호우 등 재난피해 줄이는 '디지털트윈'
LX공사가 드론 등을 통해 취득한 공간 정보는 '디지털트윈' 기술의 밑거름으로 활용된다.
디지털트윈은 현실 도시의 모습을 동일하게 복제한 가상의 디지털 공간(2D+3D)을 구축, 도시에서 발생하는 각종 데이터를 동기화해 현실의 문제를 가상공간에서 분석하고 실험하는 기술이다.
가령 서울과 지리·행정 등 모든 정보가 동일한 도시를 가상에서 구축했다면, 집중 호우가 예상될 경우 '가상의 서울'에서 호우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현실의 서울'에서 미리 하천을 정비하거나 피해 지역에 대피령을 내리는 식이다.
단지 건물만 재현하는게 아니라 도시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건물 실내에 대한 부분까지 3차원 리모델링화해서 똑같은 가상 공간을 만든다는 점에서 '쌍둥이 도시'나 다름 없다.
정밀한 위치와 형상을 지닌 지상, 지하, 각종 시설물, 건물 시내외 통합 모델로 교통, 환경, 에너지 등 도시에서 생성되는 실시간 데이터를 디지털트윈과 연계해 공간상에 표출할 수도 있다.
LX공사는 도시 단위 디지털트윈 모델을 활용하고 지자체 행정정책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LX디지털트윈 플랫폼' 구축에도 나선다.
최종묵 LX공사 디지털트윈처장은 "디지털트윈 플랫폼의 활용은 무한에 가깝다"며 문화재, 3차원 지형분석, 실시간 건물 모니터링, 하천 모니터링 등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중 문화재 서비스는 디지털트윈 공간상에서 문화재 보호구역 데이터를 활용해 각각의 구역 내 건축 고도제한을 위반한 건축물을 확인할 수 있어 인허가 업무의 효율화를 지원할 수 있다.
"디지털트윈 국토로 도시문제 해결"
LX 공사는 디지털트윈으로 얻은 국토 도시의 정적 데이터(행정정보 등), 동적 데이터(IoT 등)를 통해 '도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분산된 도시 데이터(행정·공공·민간 등)를 디지털트윈 공간을 기준으로 통합하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도시 융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이미 싱가포르는 디지털트윈을 활용해 건물 신축 시 바람길의 영향 시뮬레이션, 태양광 발전설비의 최적입지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추진하고 있다.
LX공사는 '전국토의 디지털트윈화'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현재 도시 디지털트윈 모델 구축이 완료된 곳은 지난 2018~2021년 시범사업을 통해 진행된 전주시 한 곳 뿐이다.
김정렬 사장은 "이제 우리가 사는 공간은 X축, Y축에 이어 Z축까지 있어야 한다"며 "평면에서 공간으로 생활 공간이 확대됐기 때문에 공간 정보의 범위에 입체적 공간이 취득돼야 하고 디지털 데이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가상 현실 세계가 연결돼 비중이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 사회엔 공간 정보를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안 된다"며 "디지털트윈 기반 가상 세계가 구축되면 재난 방지, 도시 관리, 도시 계획 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을 짓기 전에 일조권이 침해되는 지역, 지진 발생 시 대피해야할 장소를 알 수 있고 건설공사 시뮬레이션을 통한 비용 및 기간 단축이 가능해지는 등 장점이 많다"며 "LX공사가 국토부의 '디지털트윈국토 비전' 구축하는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아직까지 디지털트윈 관련 법·제도가 부족한 게 걸림돌이다.
김 사장은 "선투자해야 할 것도 많고 관련 기관과 융복합해야 할 것도 많은데 디지털트윈 용어 자체가 법에 들어가 있지 않고, 디지털트윈을 구축해도 3차원 공간 정보는 국가 보안상 대외 공개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며 "LX공사법 등 독립된 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