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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민간임대 매매예약금, '전세사기' 떠오르는 이유

  • 2023.11.23(목) 13:40

민간임대, '매매예약금' 관행에 임차인 부담
임대료 외 수억원 내고도 분양전환 불투명?
차라리 양성화?…"민간임대 취지 되찾아야"

# 국내 기차엔 '자유석' 제도가 있습니다. 예약석이 남으면 선착순으로 앉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서서 가야 하죠. 그래서 예약 좌석보다는 요금이 저렴한데요. 기차가 아파트고 자유석이 분양권이라면 어떨까요. 좌석(분양권)을 차지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수억원의 운임료(예약금)을 내야 한다면요? 

장기일반 민간임대 아파트의 '매매예약금' 얘기입니다. 향후 '우선 분양'을 약속하는 댓가로 수억원의 매매예약금을 내게 하지만 분양권도 예약금 보호도 불투명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이 위태로운 시장을 두고 '제2의 전세사기 사태'를 우려하는 시각도 나옵니다. 예고했던 분양 전환 시점에 주택사업자가 도산하는 등 변수가 생기면 임차인들은 집도 돈도 잃을 수 있거든요. 대체 왜 이런 관행이 유지되고 있는 걸까요.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우선권 없는데 예약금 받는다?

최근 민간임대 시장에서 '매매예약금' 관련 불공정계약 등으로 인한 피해가 꾸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공공지원 및 장기일반 민간임대는 8~10년간 임차해서 살다가 임대 의무 기간이 끝나면 분양 전환이 가능한 아파트인데요. 부동산 상승기였던 2~3년 전 '규제 틈새상품'으로 꼽히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청약 통장이 필요없는 데다 무주택 기간을 유지하면서 보유세도 내지 않기 떄문이죠. 분양가 확정형으로 공급하는 단지는 시세 차익도 기대할 수 있고요. 

하지만 향후 분양 전환된다는 점을 악용한 '꼼수 분양'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게 '매매예약금' 입니다. 주택사업자는 매매예약제도를 통해 임대 종료 후 소유권 이전을 약속해주는데요. 법적 제도가 아닌 만큼 불공정 관행이 만연합니다.▷관련기사:[알쓸부잡]아파트 매매예약금,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3월16일)

우선 금액이 고무줄인데요. 예약금 설정 범위 등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어 사업장마다 요구하는 금액이 천차만별입니다. 수도권 아파트의 경우 수억원의 매매예약금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경기도 화성시에 공급하는 한 공공지원 민간임대 아파트의 경우 전용면적 148㎡의 확정 분양가가 14억8500만원인데요. 이중 임대보증금은 8억3200만원, 매매예약금이 6억3500만원으로 구성됐습니다. 

결국 입주자는 8년 동안 임차해 살면서 확정 분양가의 44%에 달하는 예약금을 미리 내야 하는 건데요. 따지고 보면 임대가 아니라 '분양'인 셈입니다. 

주택사업자는 입주민들에게 예약금을 내면 입주할 수 있는 권리를 양도·양수해준다고 설명하는데요. 이 말만 철썩같이 믿고 수억원의 예약금을 내는 입주자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임대주택은 현행법상 임대사업자의 분양전환의무가 없습니다. 지난 2015년 당시 정부가 장기 임대를 유도하기 위해 기업형 주택임대사업 육성을 통한 중산층 주거혁신 방안'을 통해 관련법을 전부 개정했거든요. 

임대사업자가 예약금은 받아놓고 임대 기간을 더 늘리거나 분양 전환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더 큰 문제는 예약금 보호 장치가 없다는 겁니다. 

매매예약금과 관련한 규정이나 법이 없다 보니 매매예약 계약 해지에 따른 반환이 어렵고요. 사업자가 부도나 파산을 하게 되면 매매예약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죠. 

애초에 예약금을 안 내면 되지 않냐고요? 매매예약이 아닌 임대 조건만으로는 주거와 관련한 혜택을 받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매매 예약을 해야 무상옵션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요. 임대 조건만으로는 발코니 확장 등을 선택할 수 없게 하는데요. 임대라서 후시공도 불가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예약금을 마련하는 거죠.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양성화+신탁사' 해법이라고?

이런 사각지대를 이용한 편법, 사기 등이 판을 치고 있지만 정부의 제재는 미적지근합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2월 전국 17개 지자체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주택협회, 대주택건설협회, 한국주택임대관리협회 등 기관에 민간임대 매매예약금을 유도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발송한 데 그쳤는데요. 

이후에도 문제가 지속되자 김민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 5월 매매예약금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민간 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법률안은 건설 임대 주택 사업자가 임대 의무기간 중 장래 매매를 위해 매매예약금 명목 등의 금전 수수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3000만원 이하)를 부과하는 내용인데요.

9월엔 국토부도 개정안을 수용하겠다는 취지의 보고서가 국회에 제출됐는데요. 하지만 건설업계가 이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정부에 전달한 상태라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건설업계는 매매예약금 제도의 양성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면 금지하는 것보다는 입주자 보호 장치를 도입하자는 거죠.

건설업계 관계자는 "매매예약금은 건설사의 자금 조달 측면에서 순기능이 있고, 사인간 계약인 만큼 이를 전면 금지토록 하는 건 맞지 않다"며 "다만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는 원금 반환, 전세권 설정, 신탁 등기 등을 강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만으론 임차인을 충분히 보호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매매예약금은 사업자의 위험 부담을 투자자(입주자)에게 떠넘기는 제도"라며 "건설업계에서 제시한 신탁 방식 등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방어 장치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대구의 한 공공건설임대주택 임대사업자는 신탁 계좌를 통해 임차인들에게 73억원을 받은 뒤 여러 차례 인출해 횡령,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도 있었고요.

이에 지금까지 드러난 불공정 관행을 바로 잡지 않으면 향후 '제2의 전세사기' 사태가 터질 거란 우려도 나옵니다. 

이 전문가는 "계속되는 피해에도 제재를 하지 않는다면 향후 분양 전환 시점이 돼서 거액의 매매예약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분양권도 못 받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며 "임차인이 순식간에 돈도 집도 잃게 되는 게 전세사기 사태와 다를 게 무엇이냐"고 꼬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꼼수가 계속되면 정부의 민간임대 활성화 정책의 방향성도 흔들리는 셈"이라며 "민간임대 제도의 취지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재 등) 뭔가를 하려면 법에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이 빨리 처리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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