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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나쁜 임대인 vs 나쁜 임차인' 새해엔 달라지길

  • 2024.01.01(월) 12:12

갱신청구권 도입, 전세사기 거치며 적대감 커져
'갈라치기' 부추긴 임대차보호법…씁쓸한 부작용
"이분법적 사고 벗어나 시장 긴장부터 줄여야"

'임대인 못 믿겠다' vs '임차인 무서워서 집 못 내놓겠다'

주택 임대차 시장이 적대감으로 가득합니다. 금리, 정책 등에 따라 시장 상황이 자주 바뀌면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이 더 다양해지고 깊어지는 모습입니다. 

이로 인한 전세 시장의 혼란도 커지고 있습니다. 임차인 보호 명목으로 나온 정책들이 오히려 가격 상승에 불을 붙이거나 아파트 쏠림 현상을 부추기는 등 불안을 키우고 있는데요.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물론 임대인-임차인 갈등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임대차 관계에서 '갑-을'이 명확하다 보니 임차인들이 억울하게 내쫓기거나 임차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했고요. 임차인의 월세 체납, 주택 원상복구 문제 등도 있었죠. 

2020년 7월부터는 임대차법 개정으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되면서 갈등의 양상이 더 다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부가 당시 집값 상승으로 인해 전셋값까지 불안해지자 '을'의 입장인 임차인 보호에 나선 게 배경이죠.

임대인이 실거주 등의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임차인의 기본 계약 기간(2년)을 최초 한 번 더 연장해 총 4년(2+2년) 살 수 있게 거주를 보장해 줬고요. 계약 연장 시에는 보증금 인상도 직전 금액의 5% 이내에서 이뤄지게끔 했죠.

하지만 시장의 상황은 법 시행 취지와는 다르게 돌아갔습니다.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충분히 올리지 못하게 되자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전세 품귀 현상이 나타났고요. 갱신 계약 거절을 둘러싼 갈등도 심화했습니다. 임대인이 실거주하겠다며 기존 세입자를 내보낸 뒤 전세보증금을 크게 올려서 새 세입자를 받기도 했거든요.

임차인 입장에선 위법성을 따지기도 모호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하기엔 법정 비용 등이 부담되니 사실상 별수 없는 일이었죠. 그러다 최근 대법원에서 실거주를 이유로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하려는 임대인은 실거주 증명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처음으로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임대인들이 쏘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판결 소식이 나오자 각종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내 집에 내가 들어가서 산다는데 그걸 임차인에게 구구절절 보고해야 하느냐'며 과하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죠.

전국 아파트 입주 및 입주예정물량./그래픽=비즈워치

임대인이 주택 매도 등의 이유로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하자 일부러 집을 보여주지 않거나, 갱신청구권을 쓰지 않을 테니 수백만~수천만원의 이사비를 달라는 '나쁜 임차인' 사례를 들기도 하고요.

지난해 말부터 수면 위로 떠오른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는 '나쁜 임대인' 이미지를 키운 계기였습니다. 집값 하락기로 접어들면서 '깡통 전세'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거죠.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가 잇달아 나타나면서 보증금 반환 불안이 커졌습니다. 

이렇게 갈수록 임대인과 임차인의 신뢰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부의 대책이 '갈라치기'를 부추겼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임차인만 더 보호하는 새 임대차법 등의 이분법적인 정책이 오히려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거죠. 

정책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대표적인 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기준 상향입니다. 정부는 전세사기 대책의 일환으로 올해 5월부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공시가의 150%에서 126%까지 낮췄고. 내년 6월부터는 임대사업자에게 의무적으로 이 규정을 적용하기로 했죠.

이렇게 되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 보호 기능은 강화되지만, 빌라 등 비아파트의 경우 공시가가 낮기 때문에 보증보험 가입이 어려워져 전세 거래가 경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안 된 매물이 많아지면 제2의 전세사기 사태가 올 수도 있고요. 

실제로 빌라 시장은 전세사기, 보증보험 규제 등이 겹치면서 거래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전국 빌라(다세대·연립) 매매 거래는 7만132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1만6492건)에 비해 38.8% 감소했습니다.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도 허술합니다. 국토부는 지난달 27일부터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반환하지 않은 상습 채무불이행자의 이름, 나이, 주소 등을 공개하기로 했는데요. 그러나 소급 적용이 제한되면서 공개 대상은 17명에 불과합니다.

2022-2023 전국 빌라(다세대·연립) 매매거래량./그래픽=비즈워치

더군다나 내년부터는 서울 등 수도권 중심으로 입주 물량이 줄어들어 전세 시장에 한파가 우려되고 있는데요. 부동산R114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조사 기준 전국 아파트 입주 및 입주예정물량은 2023년 36만4343가구에서 2024년 33만2191가구로 8.8%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시장이 바짝 마른 상황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적대감이 점점 커지고 있으니 '안정'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참 안타깝죠. 사실 전세는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으로 목돈을 굴릴 수 있고 임차인은 일정 기간 거주하다가 보증금을 돌려받으니 '윈-윈' 제도였거든요. 

그러나 지금도 다수의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임대인-임차인으로 나뉘어 서로를 죄인 취급하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임대차 시장 안정을 위해선 '땜질식 처방'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근본적인 제도 손질이 필요해 보입니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정부가 임대차 보호법을 지나치게 임차인 보호 위주로 만들었지만 임차인 피해가 되레 더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시장 경제 원리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개입하다 보니 오히려 시장 혼란이 커졌다"고 짚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는 전세보증금 규모가 매우 큰데도 불구하고 개인 간 자금 거래를 하는데, 그 허점이 전세사기 등에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에스크로 제도 등을 활용해 제도의 안정화를 도모하고 거래 당사자들도 계약 시 스스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전세 공급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인 만큼 생계형 다주택자 등에겐 임대를 장려하는 등 인센티브 정책도 필요하다"며 "이분법적으로 시장을 갈라놓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의 긴장을 줄여야 안정화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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