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45년차, 재건축 추진 28년차를 맞은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정비사업 발걸음이 다시 멈춰섰다. 재건축 조합장의 부정선거 의혹이 일면서 조합장 직무정지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조합 정상화를 통해 갈등을 봉합하고 사업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재건축 기대감이 커지면서 실거래가가 2021년 최고가에 근접한 적도 있지만 최근 가격 흐름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피로도가 높아진 일부 조합원들이 매물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체결된 거래는 1건뿐이다. 일반분양 물량이 적어 사업성이 떨어지는 만큼 조합원들의 분담금 부담이 의외로 커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달리던 은마, 조합장 직무정지 판결로 '브레이크'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1민사부는 지난달 12일 이재성 은마소유자협의회(은소협) 대표가 최정희 조합장을 상대로 낸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앞서 지난해 8월 열린 조합장 선거에서 최정희 전 추진위원장이 2702표를 받아 이 대표(838표)를 누르고 초대 조합장에 선정됐다.
법원은 "선거의 전반적인 관리가 상당히 부실하고 위법했으며 이는 선거 결과에 계량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에 충분하다"며 "득표차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으나 공정한 선거절차에 따라 이뤄진 객관적인 결과임을 확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은소협은 법원에 본안소송을 제기함과 동시에 직무대행 선임을 요청할 계획을 밝혔다. 조합 측은 판결문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으므로 적극 소명해 소송을 최대한 빨리 끝낸다는 입장이다.
소송전이 벌어지면서 은마 재건축 사업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1979년 입주한 은마아파트는 1996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해 2003년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았다. 20년 넘게 지지부진하다가 지난해 9월 드디어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그렇게 속도를 내나 싶더니 조합 내분으로 다시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관련기사: 은마아파트 조합설립…20년만에 '달려라 금마!'(2023년9월27일)
김예림 변호사(법무법인 심목)는 "공정하게 재선거 해서 조합장을 선출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양쪽 다 재고 있는 것 같다"며 "이대로 소송전이 계속된다면 사업이 최소 1년 이상 지연될뿐더러 조합장이 공석인 상태에서는 사업 진행 자체가 멈추게 된다"고 진단했다.
"재건축 못 기다려"…84㎡ 실망매물 26억원선
재건축 기대감이 커지면서 한때 가격이 반등하기도 했다. 전용 84㎡는 2021년 11월 최고가 28억2000만원을 기록했지만, 2022년 10월 21억원까지 떨어졌다. 조합 설립 총회가 열리던 지난해 8월엔 27억2000만원까지 다시 올랐다.
전용 76㎡의 경우도 2021년 11월 26억3500만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 2022년 11월 17억7000만원까지 급락했지만 이듬해 2월 20억원선을 회복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거래량과 가격 흐름이 좋지 않은 모습이다. 84㎡는 지난해 11월(27억8000만원)이 마지막 거래였다. 12월과 1월엔 76㎡ 거래 1건씩(24억원, 23억7000만원)만 체결됐다.
대치동의 A 공인중개사는 "현재 76㎡은 23억원, 84㎡는 26억원까지 매물이 나와있다"며 "조합장 리스크가 있다보니 (재건축을 못 기다리는) 80~90대 고령 집주인들이 팔려고 내놓은 물건이 다소 있어 흥정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B 공인중개사도 "조합설립인가 이후 '10년 보유, 5년 거주, 1주택자' 물건만 팔 수 있어 매물이 많지 않다"며 "가처분 결과로 '(재건축이) 금방 될 줄 알았는데 더 걸리겠다', '못 기다리겠다'고 판단한 실망매물이 좀 나왔다"고 전했다.
일반분양가 평당 7100만원 예상…커지는 분담금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지금 상태로 순조롭게 간다 해도 10년은 족히 걸리는데, 갈등이 심해지면 조합을 만드는 데까지 겪었던 기간만큼 시간이 추가로 더 들 수도 있다. 내부결속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조합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면 사업주체를 신탁으로 변경하는 것도 해결방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상가와의 갈등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도 뇌관이 될 수 있다. 김예림 변호사는 "상가와의 협의가 아직 구체적으로 되지 않았고, 상가 조합원에게 불리한 부분이 있어 또 진통을 겪을 것 같다"며 "관리처분 수립시 상가 조합원의 권리가 확정되는데, 아파트 조합원이 이를 변경할 수 있도록 돼 있어 권리 침해를 우려한 상가 조합원들이 협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근본적으로 재건축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14층, 28개동, 4424가구를 최고 35층, 33개동, 5778가구로 짓게 돼 일반분양 물량이 771가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강남구청은 은마 일반분양가를 3.3㎡(평)당 7100만원, 84㎡ 기준 24억원으로 잡고 있다.
송승현 대표는 "공사비, 금융비가 계속 늘면서 중층 이상 아파트가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시장 상황"이라며 "압구정과 마찬가지로 강남에서도 추가 분담금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압구정3구역 조합의 경우 최근 일반분양가를 7850만원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른 조합원 분담금은 최고 55억원에 달한다.
김예림 변호사도 "일반분양분이 거의 없으니 추가 분담금 이슈가 클 수밖에 없다"며 "조합장이 추진하던 49층 변경안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은마 재건축은 강남 재건축의 오랜 바로미터다. 김웅식 리얼투데이 리서치연구원은 "이해관계가 다양한 은마가 재건축되면 다른 단지도 덩달아 잘 풀릴 수 있을 듯하다"며 "강남권 분양 단지들이 최고가를 경신하는 만큼 늦게 분양할수록 일반분양가는 계속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