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명절 밥상머리 화두에서 오랜만에 '부동산'이 밀렸습니다. 한창 집값 상승기 땐 집 사서 얼마를 벌었는지, 주택 마련 자금을 어떻게 '영끌' 했는지 등의 경험담(또는 실패담)이 오고 갔다면요. 상승기가 멈춘 최근엔 집보다는 '교통' 얘기가 더 많이 나왔습니다.
시장이 주택 매수 관망 모드에 들어간 만큼 당장 현 위치에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대중 교통망에 관심이 쏠렸죠. 주택 매수 타이밍을 재던 한 친척도 교통 호재 지역을 선점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특히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향한 주목도가 높았죠.
GTX는 말 그대로 수도권 내 '급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노선인 만큼 해당 지역에 대형 호재로 꼽힙니다. 지하 깊숙이 대심도로 철도망을 뚫고 정류장도 적어 일반 지하철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거든요. 일단 뚫리기만 하면 경기·인천에서 서울까지 30분 만에 도달할 수 있죠.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이기도 합니다. 윤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수도권 어디서나 서울 도심까지 30분 출근 시대'를 열겠다고 예고했고요. 이어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25 교통 대책을 통해 GTX A, B, C 노선의 연장안과 D, E, F 노선의 윤곽을 잡았습니다. ▷관련기사:GTX, 춘천·원주·아산까지 달린다…세종은 'CTX'(1월25일)
국토부에 따르면 A 노선(2024년부터 순차 개통)이 뚫면 서울 강남구에서 경기도 화성시 동탄까지 기존 79분 걸리던 이동 시간이 19분으로 줄어들고요. B 노선(2030년 개통)을 이용하면 인천에서 서울까지 95분에서 30분, C 노선(2028년 개통)은 수원에서 삼성까지 80분에서 27분으로 단축할 수 있습니다.
경기·인천에서 서울로 통근, 통학 등을 하는 지역민이라면 숨통이 트일만한 소식이죠. 지역으로 봐도 희소식입니다. 교통망이 뚫리면 이동 수요, 거주 수요가 많아지면서 지역에 활기가 돌 테니까요. 실제로 이 같은 장점들이 호재로 작용하면서 일부 GTX 수혜 지역들의 집값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2월 둘째 주(12일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전주보다 0.04% 하락하면서 12주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는데요. GTX 등 교통 호재가 있는 지역은 오름세를 유지했습니다.
특히 GTX-D 등의 수혜지 김포시는 1월22일(0.04%)부터 상승 전환해 4주째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고요. GTX-A가 서는 고양시 덕양구와 GTX-A와 C 노선이 교차하는 평택, GTX-D가 정차하는 인천 서구는 지난달 29일(0.14%)부터 3주째 상승세입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을 제외하고선 전반적으로 큰 움직임은 없는 듯합니다. 실제로 GTX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까진 갈 길이 멀거든요.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A 노선도 올 상반기 수서~동탄 구간만 일부 개통하고요. B 노선은 춘천, C 노선은 천안·아산까지 잇기로 하는 등 변수가 많습니다.
D~F 노선은 더 안갯속입니다. 국토부는 빠른 추진을 위해 이들 노선은 1~2단계로 나눠서 구간별 개통을 추진하기로 했는데요. 순환선인 F 노선의 경우 교산~덕소~왕숙2 구간 외 나머지 구간이 모두 2단계라 '유니콘 노선'이라는 오명이 붙기도 했죠. 현실과 거리가 먼 '상상 속의 동물' 유니콘이요.
김포 5호선 연장 문제처럼 지역 간 갈등이 더해지면 사업 추진 속도가 더 더뎌질 수 있죠. 134조원의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건지도 문제로 꼽힙니다. 개통된다고 해도 GTX 탑승, 환승 등 거리를 생각해 보면 실제 이동 소요 시간이 기대보다 더 걸릴 수도 있고요.
이 와중에 서울시는 '틈새 교통'까지 노리고 나섰습니다. 과거 추진했던 '수상 택시' 개념을 확장해 한강을 통해 시내를 오가는 수상버스 '한강리버버스'를 운행하기로 한 건데요. 육상 수단에 비해 교통체증이 없고 출퇴근길에 낭만(?)을 기대할 수도 있겠죠.
마곡~잠실 7개 선착장을 거치고 한 번에 199명까지 탈 수 있다네요.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30분 만에 이동할 수 있답니다. 기존 지하철 이동시간과 비슷하니 사람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엔 여유로운 교통수단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경제성'을 따져보면 의문부호가 붙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선착장까지 멀어서 실제 이동 시간이 크게 단축되지 않을 거란 지적도 있고요. 유력 노선으로 거론된 김포~서울 구간도 예산 편성 등의 이유로 빠졌거든요.
GTX나 한강리버버스나 참 이상적입니다. 청사진만 보면 '출퇴근 30분 시대'가 코앞이죠. 하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변수도 많고 효용성에 대해서도 여러 의심이 나오는 만큼 괜히 '희망 고문'만 커지는 게 아닐지 우려가 끊이질 않습니다.
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갈수록 떨어집니다. GTX는 당초 도입 취지와 다르게 지방까지 이어버렸고 한강리버버스는 과거 수상택시의 실패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교통이야말로 국민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분야인 만큼 더 실효성 있고 신뢰도 높은 정책이 나와야 할 텐데 말이죠.
교통망 확충이야말로 집값 안정, 저출산 등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고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등장인물의 절규가 떠오릅니다. "아버지, 제가요, 차도 없고요, 경기도민이에요. 어떻게 연애를 하고 어떻게 결혼을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