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재건축은 여러 단지를 하나의 특별정비구역으로 묶어 추진하는 '통합정비(통합재건축)'가 가장 큰 난제로 꼽힌다. 단지별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이견 조율이 쉽지 않아 사업 추진이 더뎌질 수 있어서다.
'2027년 착공, 2030년 첫 입주'를 목표로 내건 정부는 통합정비와 함께 기본계획 수립에 '패스트트랙'을 도입했다. 기존 정비사업에는 없었던 예비사업시행자를 지정하고 지방자치단체 등 정비사업 심의 주체를 사전 준비작업에 참여시켜 사업 시기를 앞당긴다는 복안이다. 패스트트랙 도입이 통합정비의 부작용을 상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존에 없던 '통합정비'
정부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을 통해 조성한 지 20년 이상 된 1기신도시를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방안을 내놨다. 일부 단지만이 아닌 도시 전반을 손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안전진단 면제, 용적률 완화 등 각종 특례를 부여하고, '통합정비'를 신규 도입했다.
통합정비는 다양한 기능과 용도로 사용되는 구역을 하나의 큰 특별정비구역으로 묶는 방식이다. 구역의 기존 기능·용도 간 연계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 정주요건과 도시기능을 향상하는 것이 목표다.
특별정비구역에는 주택단지를 비롯해 역세권 개발, 기반시설 확충, 이주주택 공급 등이 포함된다. 기존 주거지를 다시 주거지로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회기반시설(SOC), 도로, 녹지와 함께 다양한 유형의 주거단지를 재배치할 수 있다.
재건축 재개발이 어려운 노후저층 주거지를 모아 통합개발 하는 서울시 '모아주택'과도 의미가 유사해 보이지만 1500㎡ 이상 소규모 재건축 단지를 말하는 모아주택과 달리 1기 신도시 통합정비 규모는 100만㎡ 이상 규모다.
대규모 사업인 만큼 규모의 경제에 따른 사업비 절감과, 토지이용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공간을 재구조화하는 만큼 주거지와 각종 시설 위치 등이 바뀔 수 있다. 주민 간 이견조율이 만만치 않은 이유다. 이견 조율이 안 될 경우 사업이 지연돼 비용이 계획보다 늘어날 수 있다.
통합정비의 장점도 분명하지만 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인 시간문제가 불거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장기간 소요되는 정비계획 수립단계에 '패스트트랙'을 도입했다.
초기 정비계획 '5년→1년'...패스트트랙 뭐길래?
도시정비계획은 본래 지방자치단체장 입안이 원칙이다. 노후계획신도시의 경우 특별법을 통해 주민(토지 등 소유자)이 직접 정비계획 초안을 수립, 구역지정 등을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
단 주민의 경험과 자금력이 부족해 정비계획 직접 수립이 어려운 만큼 공공기관, 신탁사 등 전문가를 '예비사업시행자'로 지정해 계획수립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본사업 시행자 선정과는 별도로 패스트트랙에만 적용된다. 주민 과반 동의로 지정할 수 있도록 요건도 낮췄다.
계획 수립 과정에서는 지정권자인 지자체의 자문을 받을 수 있다. 사업지연 요소로 꼽히는 학교 문제도 사전에 협의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하는 교육청을 계획수립 협의과정에 참여시켜 계획수립 속도를 높이고 차후 사업지연 요소도 사전에 줄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비사업 대못인 안전진단 절차를 뒤로 미루고, 단계별 심의 절차를 간소화한 재건축·재개발 특례법과 비교해도 초기 절차를 훨씬 단축한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신탁사, 공공기관(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은 그동안 정비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지위가 없었다"며 "패스트트랙 도입으로 사업 초기부터 계획 수립에 전문가들이 참여하면 사업 진척이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와 소통이 어렵거나 반복적인 수정 요구로 심의 등 시간이 길어졌던 부분도 계획수립 과정에 지자체, 교육청 등이 참여해 자문을 받고 협의를 진행할 수 있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통상 5년 이상 걸리던 정비계획 수립을 최대 1년으로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민이 계획 초안을 수립하는 과정에 지자체가 참여해 자문하기 때문에 심의 과정에서 불필요한 행정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규모 주민동의를 받아야 하는 만큼 전자투표 방식도 도입할 예정이다.
'재배치, 상가지분' 난제…동의 확보 관건
정비계획 수립 시기를 단축할 수 있는 구조는 마련됐지만 문제는 산적해 있다. '주민 동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진행 자체가 여전히 쉽지 않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 일부 단지 주민들은 기존 인프라, 입지 등율 유지하는 '제자리 재건축'을 요구하고 있다. 지하철역에 가까운 역세권 입지 단지들은 입지 그대로 새 아파트를 받기 원한다. 단지 간 이해충돌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기반시설의 재배치를 위한 통합정비 취지도 멀어진다.
대규모 상가를 끼고 있는 단지들도 문제다. 최근 법원 판결로 상가조합원이 아파트 분양권을 받기 어려워진 만큼 사업 진행에 있어 상가 조합(주민) 동의를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 불거질 수 있다. 특히 분당 양지마을의 경우 상가지분 관련 문제가 이미 불거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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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관계자는 "상가의 반대로 통합정비가 어려울 경우 상가 부지를 제척(제외)하거나 제척이 어려울 경우 정비계획 수립 시 상가 존치나 리모델링 계획으로 놔둔 후 따로 정비하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패스트트랙 도입만으로는 1기 신도시 재건축 속도를 높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1기 신도시는 통합정비로 인해 의견 통합 범위가 넓어지다 보니 일반적인 재건축 단지와 비교해 추진이 더 어렵다"면서 "패스트트랙 도입으로 행정적인 부분들을 당길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 대부분은 주민 동의를 받아야 사업 추진이 가능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재건축, 재개발은 행정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최근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행정적인 부분이나 관심들이 후순위로 밀린 상황"이라며 "정치적 이슈뿐 아니라 공사비 비용부담 등 우려도 계속 커지고 있어 추진 동력이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