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세금 농사가 수확기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뿌려놓은 세법 개정안의 씨앗들이 연말 정기국회에서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세금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든 직장인과 자영업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본시장이나 부동산 투자자들은 내년부터 바뀔 세법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여느 해보다도 치열하게 논의될 세금 법안들의 면면(面面)과 이해관계가 얽힌 각계 찬반 논리를 미리 살펴보고, 납세자 입장에선 세부담이 어떻게 달라질지 가늠해본다. [편집자]
◇ 부자의 지갑을 잡아라
올해 세입 여건은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당시보다 세수 부족에 대한 우려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경기부진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서 세금을 더 걷을 수밖에 없다.
정부나 정치권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세입원은 부자들의 소득이다. 이명박 정부 내내 논란의 중심이었던 '부자 감세'를 되돌린다는 명분도 있고, 적은 납세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어차피 세금에 대한 불만이 나타날 게 뻔하다면 중산·서민층이나 저소득자,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을 건드리기 보단 고소득자나 대기업을 겨냥하는 것이 명분이나 실리 면에서 유리하다는 점도 감안됐다. 세금을 통한 소득 재분배와 사회 양극화 해소에도 특효약이라는 '부자 증세'는 현 정부에서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인 카드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근로소득 1억원이 넘는 고소득자는 2006년 8만명에서 2011년 20만명으로 5년 사이 2.5배가 늘었다. 전체 근로자대비 비중도 같은 기간 0.67%에서 1.3%로 상승했다. 부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외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부자들의 소득세 부담은 적은 편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절반을 넘는 19곳의 소득세 최고세율이 45%를 넘었지만, 우리나라는 38%에 그쳤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즐겨 사용하는 통계 중 하나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3.6%로 OECD 평균 8.4%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 與도 野도 '증세' 손짓
고소득자의 소득세를 늘리기 위한 움직임은 여당과 야당은 물론, 정부까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기세라면 연말 국회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고소득자 증세 방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최고세율부터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출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과세표준 5억원 초과 구간에 45% 세율을 신설하고, 1억5000만원~5억원 사이에는 40% 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재 소득세 최고세율은 과세표준 3억원 초과시 38%인데, 고소득자를 상대로 한층 강력하게 세금을 걷어보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민 의원은 고소득자에 대한 근로소득공제율도 총급여 1억원까지만 5%를 적용하는 대신, 총급여 1억원~1억5000만원 구간은 공제율 3%, 총급여 1억5000만원 초과는 1%만 공제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현재 4500만원 초과 구간에 5%의 공제율이 적용되는 것을 고소득자에 한해 줄이는 방안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최고세율 인상과 근로소득 공제율 조정으로만 향후 5년간 11조4001억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아예 총급여 450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근로소득공제를 폐지하는 법안을 내놨다. 5년간 세수 증가 예상액은 7조4417억원이다. 민병두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서 최고세율 인상 부분을 제외하면, 근로소득 공제율 축소 효과 자체로는 훨씬 강력하다.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은 총급여 1500만원 이하분에 대해 공제율을 50~80%에서 40~60%로 축소하고, 연말정산 1인당 기본공제액을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고소득층을 포함해 더 많은 근로자가 세금을 더 내야하고, 부양가족이 많으면 조금 덜 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향후 1조8338억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근로소득공제율을 위 아래로 모두 줄이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총급여 500만원 이하 구간의 공제율은 현행 80%에서 70%, 총급여 500~1500만원 구간은 50%에서 40%로 축소하고, 총급여 1억원 초과 구간에는 현행 5%가 아닌 2%만 공제한다. 전반적인 공제율 축소로 면세자 비율을 줄이는 것이 법안의 포인트인데, 고소득자의 과도한 조세감면을 방지한다는 맥락은 기존 국회의원들의 취지와도 같다.
◇ 어쨌든 세금 더 내라는 얘기
근로소득공제율을 손질하는 네 가지 법안을 실제로 계산해보면 고소득 근로자의 공제 규모가 줄고, 세부담은 늘어난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연봉(총급여) 2억원인 근로자를 기준으로 현재 근로소득 공제액은 2050만원이지만,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을 적용하면 1675만원으로 375만원 줄어든다.
같은 조건으로 박원석 의원의 법안은 1275만원까지 근로소득공제액이 감소한다. 현재보다 공제금액이 775만원 줄어드는 것으로 그만큼 연말정산 소득세 계산에서 불리한 혜택을 받는다. 총급여 4500만원 초과 구간의 공제를 아예 없애기 때문에 고소득자 증세 효율이 가장 높다.
민병두 의원과 이만우 의원이 제시한 법안은 각각 근로소득공제액이 1750만원, 1850만원 수준으로 정부 개정안보다는 고소득자에게 후한 편이지만, 현행 규정보다는 200만~300만원 가량 공제 규모를 적게 가져간다.
여기에 각종 인적공제 보험료, 교육비, 의료비 등 특별공제, 신용카드 소득공제 등을 모두 제한 후 소득세율 6~38%를 단계적으로 적용해 최종 세금을 확정한다. 정부가 또 다른 증세 카드로 내놓은 연말정산 세액공제 전환 방안까지 함께 시행된다면, 세부담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부자를 향한 증세 혹은 부자감세 철회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고소득층은 내년 세금 지갑을 올해보다 더 열어야 할 판이다. 얼마나 폭넓게 세금을 쥐어짜낼지는 연말 국회의 심사와 의결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