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처리해요. 지가(자기가) 꿀꺽 먹었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죽기 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자신이 이완구 총리에게 전달했던 비자금 3000만원의 회계처리 여부에 대한 언급이다. 발언의 사실관계를 떠나 받은 사람이 회계처리 하지 않았다면 준 사람은 회계처리를 했을까.
검찰이 구속영장에서 밝힌 성 전 회장의 혐의는 크게 세가지다. 분식회계 약 9500억원, 정부 융자금과 금융권 대출사기 약 800억원, 회사자금 횡령 약 250억원. 분식회계 혐의금액은 1조원 규모에 달한다. 세차례나 워크아웃을 겪은 경남기업에서 수시로 수억원~수십억원의 비자금과 정치자금을 조달한 것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정상적인 회계처리를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검찰은 특히 경남기업이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자원개발 명목으로 수백억원의 정부융자금을 받은 사실이 있다는 점에서 분식회계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다. 정부의 성공불융자금이나 에너지특별회계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재무평가를 통과해야한다.
이와 관련 성 전 회장과 경남기업 측은 "1조원 분식은 말이 안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경남기업 분식회계나 성 전 회장의 횡령의혹의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까. 우선 경남기업의 과거 사업보고서와 회계 감사보고서를 들여다봤다.
◇ 흩어져 있는 '현장 전도금'
검찰은 성 전 회장이 경남기업과 계열사의 '현장 전도금'을 빼돌려 비자금의 일부로 활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 전도금은 건설사와 같이 본사와 현장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본사에서 현장의 운영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보내는 돈이다. 임금을 비롯해 기계장비 수선비, 소모품비, 교통비, 통신비, 잡비 등이 모두 전도금에 해당된다.
출장소장이나 현장소장의 전결로 사용할 수 있지만 담당 임원이 건설공사의 사업예산 범위를 감안해 금액을 조정할 수도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전도금을 비자금으로 빼돌리는 것은 비교적 손쉬운 일로 꼽힌다. 임금만 하더라도 건설현장의 근로자 상당수가 일용직이어서 그 숫자나 금액을 정형화하기 어렵고, 국세청 등에 노출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 대형건설사 재무 관계자는 "현금으로 운영되는 것은 사실상 전도금밖에 없다. 현금을 빼돌렸다면 전도금에서 빼돌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이 공개하고 있는 재무제표나 손익계산서 등에서 전도금을 별도로 산출하기는 어렵다. 임금, 수선비, 소모품비, 잡비 등은 모두 손익계산서상 판매비와 관리비항목으로 통합돼 있고, 임금 등 각 개별 항목에서 전도금으로 사용된 금액이 얼마인지는 떼 내어 볼 수 없다.
다만 전도금이 늘어났다고 가정한다면 판매비와 관리비, 즉 판관비도 늘어난 것으로 볼 수는 있다. 경남기업의 판관비는 대아건설과 합병한 2004년 285억원수준에서 2005년 568억원대로 불어나고, 2006년 641억원, 2007년 649억원까지 증가했다. 특히 2008년에는 883억원대로 급증했다가 2009년에 워크아웃이 시작되면서 400억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경남기업 외에도 경남기업의 계열사인 대원건설산업, 대아레저산업 등도 모두 전도금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건설·토목업종이다. 대아레저산업은 성 전 회장이 71.75%의 지분을 보유하는 등 성 전 회장 일가와 경남기업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대원건설산업은 경남기업이 96.65%, 성 전 회장의 동생인 성석종씨가 3.35%의 지분을 보유중이다.
성 전 회장은 본인이 최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에서 직접 대출을 받아 쓴 금액도 적지 않다. 대아레저산업의 경우 최대주주인 성 전 회장이 빌려쓴 대여금 잔액이 2008년 24억2408만원에서 2009년 36억9126만원으로 늘고 2010년에는 63억5360만원으로 불어났다. 2010년의 경우 대아레저산업의 전체 단기대여금 58억원보다도 많은 수치다.
◇ 단기차입금의 급증
경남기업의 단기차입금이 2007년을 기점으로 크게 증가한 점도 눈에 띈다. 단기차입금은 1년 미만단위로 빌려다 쓰는 빚이다. 장기차입금에 비해 갚아야 할 시점이 빨리 도래하기 때문에 단기차입금이 많을수록 재무위험 커진다. 담보능력이 되지 않는 중소기업이나 신생벤처기업에서 주로 그 비율이 높다.
경남기업은 단기차입금이 100억원도 되지 않는 기업이었지만 2004년 대아건설과 합병한 이후 단기차입금이 2000억원대 이상으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2003년 74억원이던 경남기업의 단기차입금은 2004년 2838억원, 2005년 2092억원, 2006년 2452억원으로 2000억원대 단기차입금을 끌어다 쓰고 또 갚아왔다. 그러나 2007년에는 단기차입금의 규모가 갑자기 5082억원으로 늘어났고, 2008년에는 1조1810억원까지 불었다. 결국 다시 법정관리에 들어간 2009년에서야 경남기업의 단기차입금은 812억원으로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