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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주년]⑤-2 기부천사도 세금은 신경쓰인다

  • 2017.06.27(화) 11:12

사회적책임, 길을 묻다…인프라를 바꾸자
기업 넘어 사회적 기부문화 확산 위한 제도정비 필요
'세액공제 전환 후 기부 위축' 대표적 사례

월급의 10%를 꼬박꼬박 기부하는 두 직장인이 있다. 연봉 2500만원인 김선행씨는 1년에 250만원을 기부하고, 이다정씨는 연봉 1억원중 1000만원의 기부금을 낸다. 기부금 액수만 놓고 보면 이씨가 김씨의 4배를 낸다. 이들중 연말정산에서 누가 더 유리할까?  

답은 '이다정씨가 불리하다'이다. 정부가 기부를 장려하는 대표적인 정책수단은 세금을 깎아주는 것인데, 3년전부터 직장인의 연봉에 따라 세금의 감면폭이 다르게 설정됐다. 고액연봉자인 이씨가 기부하면 세금을 더 내야하고 상대적으로 연봉이 적은 김씨는 세금을 덜 내도록 설계된 것이다. 

고소득자에게 패널티를 부과하는 조세정책은 기부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2014년부터 바뀐 세법이 적용된 이후 기부를 하는 사람 수와 기부금액이 줄었다. 최근 10년 사이 국세청에 신고된 기부금이 전년보다 감소한 해는 2015년(귀속 기준)이 처음이다. 


◇ 의도하지 않은 결과 '저소득 직장인 기부 장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8월에 기획재정부는 직장인의 연말정산 특별공제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했다. 기존의 소득공제 제도가 저소득자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에 따라 조세형평을 맞추기 위해 세액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당시 세법개정으로 인해 저소득자는 소득세 부담이 줄었지만 고소득자는 세금을 더 내게 됐다. 

세액공제로 바뀐 특별공제 항목에는 의료비와 교육비, 보험료, 연금저축 등이 있고 기부금도 포함됐다. 이전에는 직장인의 과세표준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기부금을 종합소득금액에서 공제했는데, 바뀐 규정은 결정세액을 산출하는 단계에서 15%의 공제를 적용하도록 했다. 직장인이 기부금을 100만원 냈다면 연말정산할때 내야할 소득세에서 15만원을 환급해주는 방식이다. 

기부금 세액공제율이 15%로 정해지면서 소득수준에 따라 세부담의 차이가 생겼다. 과세표준 구간이 1200만원 이하인 직장인은 원래 6%의 소득세율이 적용되는데 기부금을 내면 15%의 세액공제를 통해 소득세를 더 환급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과세표준 1000만원인 경우 소득세로 60만원을 내야하는데 기부금 100만원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아 45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반면 과세표준이 4600만원을 넘는 직장인은 100만원 기부금을 내서 15%의 세액공제를 받아도 소득세율이 24%를 넘어가기 때문에 이전에 비해 세부담이 늘게 됐다. 과세표준이 1200만~4600만원 사이인 직장인은 세율이 15%로 기부금 세액공제와 똑같기 때문에 세부담의 변동이 없다. 결국 기부금을 똑같이 낸다고 가정할 때 과세표준 1200만원 이하인 저소득 직장인은 소득세를 덜 내고, 과세표준이 4600만원을 넘으면 세금을 더 내게 된 것이다. 

이처럼 2014년 바뀐 세법이 적용된 이후 기부금 세액공제 전환은 저소득 직장인의 기부를 장려하는 대신 고소득자들이 기부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기부금 조세정책이 개인의 자발적 기부행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기부금 세액공제는 근로소득자의 소득 계층별 세부담 효과가 상이하고 고소득 계층에게 불리해졌다"며 "2014년 세법개정이 지위별로 세제상 차별을 낳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 기부가 줄고 있다

세법 개정이 기부 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는 실제 통계로도 나타났다. 국세청이 기부금 신고 현황을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귀속 기준)부터 2014년까지 신고된 기부금액은 매년 증가해왔다. 그런데 2015년 귀속 연도에는 기부금 총액이 전년보다 500억원 가량 줄었다. 기부금 신고인원도 2012년과 2013년 각각 88만명 수준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4년 82만명에 이어 2015년 78만명으로 감소했다. 

사업자나 자산가 등 종합소득자 가운데 기부금을 내는 비중도 점점 줄고 있다. 2013년에는 전체 종합소득세 신고대상자 대비 기부금 신고 비율이 19.3%였지만 2014년 16.3%에 이어 2015년에는 14.3%로 낮아졌다. 근로소득자 가운데 기부금을 신고한 비중도 2013년 30.2%에서 2014년 27.0%, 2015년 26.2%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세액공제 전환이 기부금액과 인원을 감소시켰다는 시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고소득자의 세부담을 늘렸다고 해서 기부가 줄어든 건 아니라는 해석이다. 기재부는 "기부금은 경기상황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으므로 세법개정만으로 기부금액의 증감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 기업을 넘어 사회적 기부문화 확산위한 논의 활발

정부의 기부금 세법개정은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직장인과 사업자에게 각각 다른 세금 부담을 지게 하면서 형평성 논란을 불러 왔다. 직장인일 경우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저소득자는 세금을 덜 내고 고소득자는 더 내지만, 사업자는 어차피 필요경비로 세무처리하기 때문에 세부담에 변동이 없다. 똑같은 기부금을 내더라도 소득수준이나 직업에 따라 세금을 다르게 내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소득세 납세자들 사이에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자 국회는 지난해부터 고액 기부금에 대한 추가공제 규정을 고쳤다. 소득에 관계없이 기부금을 많이 내기만 하면 세금을 더 깎아주기로 했다. 당초 기부금이 3000만원을 넘으면 25%를 세액공제하는 우대 규정이 있었는데 지난해 1월부터 2000만원이 넘는 기부금에 30%의 세액공제를 적용하도록 바꿨다. 2015년까지는 4000만원을 기부하면 세액공제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700만원(기본 450만원+추가 250만원)이었는데 지난해부터 900만원(기본 300만원+추가 600만원)으로 늘었다.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한 입법 논의는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이 제안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기부금뿐만 아니라 자원봉사 용역에 대해서도 현금 가치로 환산해 세액공제를 받게 하는 내용'이다. 10대 젊은층 중심으로 몰려있는 자원봉사 활동을 중장년층까지 유도하고 전문직 종사자의 재능기부도 늘리자는 취지다. 기부금을 노후에 돌려받는 '선진국형 기부연금 제도'를 도입하자는 법안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기부에 대한 세제혜택을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7년째 서울 각 구청에 기부하고 있는 정환만 세무사(세무법인 오늘 서울지점 대표)는 "기부는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한 실천일 뿐, 오로지 절세만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은 없다"면서도 "사회 취약계층을 돕는 기부금의 순기능을 감안하면 세액공제율을 100%까지 끌어올려도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순무 공익법인 온율 이사장(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세법개정 과정에서 기부의 고귀한 가치에 대한 철학과 인식이 미흡했다"며 "최소한 기부금 세액공제를 소득공제로 원상복귀시키고 착한 개인 기부자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기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기부문화의 확산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과 정책들을 세밀하게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부문화의 확산은 기업이 사회적책임경영을 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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