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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주년]⑤-1 관행부터 바꾸자

  • 2017.06.26(월) 17:25

사회적 책임, 길을 묻다‥인프라를 바꾸자
CSR 조직, '돈 쓰는 부서-구조조정 1순위' 인식
'CSR=사회공헌' 오류..사회적책임 시스템 전환 필요


국내에서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에 대한 인식은 매우 지엽적이다. 대부분 기부나 봉사활동 등에 머물러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사회에 혜택을 베푼다는 인식이 강하다. 기업 내부에서도 일종의 '희생'과 '봉사' 정도로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사회공헌 활동조차도 '시간나면, 여유있을때 하면되는 활동'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 '돈쓰는 부서-구조조정 1순위'..CSR 조직은 계륵?

대기업 계열사의 한 CSR 팀장은 요즘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최근 팀원들과 함께 회사의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다문화 가정과 함께하는 프로젝트였다. 장소 섭외는 물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짜느라 팀 전체가 야근까지 하며 프로젝트 기획안을 만들었다.

팀장은 팀원들의 노력이 담긴 프로젝트 기획안을 담당 임원에게 제출했다. 하지만 임원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임원은 "이런것 꼭 해야하나? 지금 신제품 출시하고 마케팅 부서에서 공들이고 있는 것 몰라? 눈치없이 이런 것 내밀었다가는 욕만 먹어." 팀장은 설득하려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그는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며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매번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들고 올라갈 때마다 핀잔만 들었다. 나름 소신을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보자는 일인데 회사는 비용으로만 여긴다. 자괴감만 든다"고 했다.

 

▲ 국내 기업에서 CSR 부서의 지위는 매우 취약하다. CSR 담당자들은 회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CSR를 보기 보다는 당장 수치로 보여지는 성과를 내느냐 여부에 주목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몇년전 CSR 부서에 근무했던 대기업 계열사 직원 박 모씨는 이런 경험담을 들려줬다. 당시 회사 실적이 좋지 않았다. 회사는 위기극복을 위해 고통을 분담하자며 조직개편 및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첫 대상이 CSR부서였다. 그는 "나는 용케 살아남았지만 부서는 해체됐다"면서 "함께 일했던 부서원중 2명은 결국 회사를 그만뒀고 2명은 타부서로 옮겼다. 가장 만만한 것이 CSR부서였다"고 전했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사회공헌활동은 가욋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매출이나 수익에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보이지 않다보니 최고 경영진들의 입장에서는 '낭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상 해야한다고 하니 억지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대부분 기업들의 CSR 예산은 탄력적이지 않다. 대체로 연말에 다음해 예산을 결정하는데, 기존에 해오던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예산이 책정된다. 새로운 시도는 환영받지 못한다는게 담당자들의 하소연이다. 극히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매출이나 이익에 연동해 예산을 책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CJ그룹의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중 하나인 '도너스 클럽'처럼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기부에 회사가 같은 금액을 매칭하는 '매칭펀드'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시도는 늘고 있다.


▲ 많은 기업들이 CSR 활동에 소극적인 것은 비용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기존에 진행해오던 활동들을 유지하는 것을 선호한다.


한 대기업 CSR 팀장은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는 생각보다 많은 비용과 수고가 들어간다"며 "이 때문에 대부분 기업에서는 획기적인 프로젝트가 아닌 이상 기존의 해왔던 것을 유지하는 데에 더 주안점을 둔다. 한해 예산을 미리 책정해두는 것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적정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 "사회공헌서 벗어나 사회적책임 시스템 갖춰야"

이같은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기업 내부의 사회적책임에 대한 정의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사회공헌 활동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기업의 사회적책임은 가성비(비용 투입 대비 효과)가 핵심 이슈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기업의 사회적책임경영에 대한 평가가 수출이나 해외시장 진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추세여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기업 내부의 인식과 시스템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LG그룹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일찍 사회공헌의 개념을 사회적책임으로 확대시킨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LG는 2008년부터 지속가능경영과 CSR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갖고 이 분야에 대한 조직을 구성하고 경영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가진 핵심역량과 경영활동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맞춰가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 LG가 에티오피아에서 진행한 '희망마을' 사업.


LG는 '지속가능경영 임원위원회'와 '지속가능경영 실무팀장회의'를 두고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임원위원회에서는 CSR에 대한 전사적인 큰 방향과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실무팀장회의에서는 이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를 두고 토의를 한다. 이렇게 도출된 실행방안은 본사는 물론 글로벌 지사에도 전달된다. 협력사들도 사회적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점검한다. 


LG가 2012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농촌지역 자립마을을 위해 시작한 'LG 희망마을'은 이같은 시스템이 적용된 대표적인 활동이다. LG는 해당지역에 우물을 시추하고 시범농장을 조성했다. 이후 주민 소득 창출을 위해 교육을 실시하는 등 각종 노하우를 전수했다. 전자수리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LG-KOICA 희망직업학교', 물이 부족한 지역의 급성 콜레라 방지를 위한 'LG 희망백신' 등도 이런 시스템을 통해 탄생한 사업들이다.


▲ CJ제일제당은 베트남 농촌개발 사업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실천하고 있다. 

LG 뿐만이 아니다. CJ의 경우도 최근 베트남에 고춧가루 공장을 준공했다. 베트남 농촌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낙후된 지역에 공장을 세워 고용창출은 물론 기술을 전수해 해당 지역의 소득창출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다. 여기서 가공된 고춧가루로 CJ제일제당은 안정적인 원료 확보가 가능해진다. 

CJ그룹 관계자는 "기업의 사회적책임은 각 기업이 가진 특성과 핵심역량을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이 해왔던 자선적 사회공헌을 넘어 말 그대로 기업이 뿌리박고 있는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과 경영시스템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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