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위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이랍니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은 2009년 펴낸 책(넛지(Nudge : Improving Decisions About Health, Wealth, and Happiness)에서 넛지를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다시 정의했죠. 넛지는 당근(특정한 방향으로 반응할 때 인센티브 제공)과 채찍(특정한 방향에 대한 선택 금지)을 사용하는 직접적인 개입과 구별됩니다.
책에서는 넛지의 대표적인 예로 남자 소변기의 파리를 듭니다. 암스테르담 공항은 화장실 남자 소변기(오줌이 닿는 부분)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여놓는 아이디어만으로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오줌발로 파리를 잡기 위해 정조준한 결과입니다.
이제 이런 넛지 소변기는 암스테르담이 아니라 동네 공중화장실에서도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널리 퍼졌습니다. 파리 한 마리가 소변기 위에는 붙어 있던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건 눈물만이 아닙니다` 라는, 기발한 문구를 제압한 셈입니다.
고속도로 진출입로와 도심 교차로에는 분홍색이나 파란색의 진행 유도선을 볼 수 있는데요. 요즘 들어 가장 성공한 넛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초보 운전자는 물론이고 매일 다니는 운전자들도 나가는 곳을 깜빡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출입로에 잘못 들어서 깜빡이를 켜고 난감해 하는 운전자들도 흔히 볼 수 있죠. 진행 유도선은 이런 `운전 실패`를 예방해 시간 낭비와 돈 낭비를 막아줍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금이 잘 걷힌다고 합니다. 기획재정부 재정동향에 따르면 올 1~7월에 걷힌 국세는 168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세수를 기록했던 작년 동기보다 13조4000억원이 더 걷혔다고 합니다.
지난해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져 법인세가 크게 늘었고, 수입량이 증가하면서 부가가치세가 많이 걷힌 게 주효했다고 하는군요. 부잣집들이 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자녀에게 서둘러 집을 물려준 것도 세수 증대에 기여했고요.
세수 증가에는 또 국세청식(式) 넛지가 효자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요. 국세청은 지난 2015년 차세대 국세행정통합시스템(NTIS)을 도입했습니다. 국세청 내부 전산시스템을 개편해 만든 엔티스는 1800억 건에 달하는 세원 관련 데이터가 축적돼 있는데요. 국세청은 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납세자들에게 온라인으로 `신고도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귀사가 1년 전에 신고한 자료를 보면 적격증빙이 5000만원 이상 부족합니다. 재고 자산도 과소 계상돼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전 안내와 연계해 사후 검증을 강화할 예정이니 성실신고를 통해 세무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의 온라인 알림장인데요. 납세자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제대로 신고하라”는 경고장으로 읽힙니다. 채찍을 든 오른 손은 뒤에 숨기고 당근을 쥔 왼손만 보여주는 것처럼 비춰지는 거죠.
이런 식이어서는 공들여 만든 세금 알림장도 `소변기의 파리`가 될 수 없을 겁니다. 납세자가 친근감을 갖도록 내용과 형식을 부드럽게 바꾸는 건 어떨까요. "귀하가 내시는 세금은 국가 살림에 소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종합소득세를 내실 때는 필요경비를 잘 따져보시는 게 중요합니다. 미처 확인하지 못했거나 몰라서 더 내신 세금은 환급 절차를 밟아 돌려드리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