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만든 스팀청소기로 대박을 낸 한경희생활과학이 부실화된 매출채권 탓에 발목이 잡혔다. 특히 매출채권의 대부분이 미국법인에 몰려있어, 미국법인이 본사 경영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한경희생활과학은 지난해 매출채권 192억원에 대한 대손충당금 101억원을 쌓았다. 대손충당금은 2013년(22억원)보다 4배 이상 급증했다. 매출채권이 부실화되면서, 돈 떼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매출채권은 미국법인 ‘HAAN CORPORATION’에 집중돼 있다. 작년 매출채권 192억원 가운데 164억원이 미국법인에 대한 매출채권이다. 매출채권의 85%가 미국법인에 연계돼 있는 셈이다. 지난해 매출채권에 대한 대규모 대손충당금을 쌓은 만큼, 미국법인이 부실해졌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국내에서 스팀청소기로 가전 사업을 일군 한경희생활과학은 2007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2007년 10월에 미국법인을 설립하고 지분 50%를 확보했다. 그 이듬해 미국법인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지분은 14%로 줄었다.
미국법인의 매출채권 부실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2009년과 2010년 한경희(사진) 대표이사와 채권·채무를 상계(相計)하는 약정을 맺었다. 한 대표는 회사가 보유한 미국법인에 대한 매출채권 1880만 달러(223억원)를 떠안는 조건으로 회사로부터 받아야 할 채권(대여금과 미지급금)을 포기했다. ‘받아야 될 돈’과 ‘갚아야 될 돈’을 서로 갈음한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쌓은 이유는 미국법인 탓만은 아니다”며 “최근 모뉴엘 등 사태로 금융권의 조건이 엄격해진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법인은 스팀청소기와 다리미 영업을 지속하고 있고, 신사업도 도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가운데 한 대표는 지난해 회사로부터 37억원을 빌렸다. 한경희생활과학은 37억원을 장부상 대여금으로 계상했다. 지난해 이 회사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억원에 불과한 상황에서 오너에게 `호기롭게` 돈을 빌려준 셈이다.
한경희생활과학은 지난해 7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사상 최악의 실적이다. 매출은 2009년 976억원을 정점으로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지난해 633억원으로 줄었다.
더 큰 문제는 현금흐름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경희생활과학은 2005년 이후 2008년과 2014년을 제외하고 8년 동안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회사로 현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최근 십년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플러스(+)였던 적은 4년뿐이다. 나머지 6년은 모두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였다. 이는 영업활동으로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다는 의미다.
경영상황이 악화된 한경희생활과학은 작년부터 지분 매각 등 외부자금 수혈에 나섰다. 한 대표가 직접 사모펀드 등의 투자처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