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소유의 스위스법인 '로베스트'가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인청산시 비자금 의혹을 규명할 핵심 자료도 함께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 |
롯데그룹 총수일가의 비자금 통로로 알려진 로베스트AG는 1985년 스위스에 설립된 서류상 회사다. 롯데물산과 롯데정보통신 등 롯데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이들과 수차례 지분거래를 했지만 실체가 드러난 건 올해 2월초 공정거래위원회가 "신격호 총괄회장이 로베스트를 실질 지배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부터다. 그 전까지 로베스트는 롯데의 계열사로도 분류되지 않은 채 정체불명의 회사로 존재해왔다.
로베스트는 옛 여수석유화학(롯데물산과 합병됨)과 호남에틸렌(대림산업과 합병됨) 등의 지분을 보유·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다. 신 총괄회장 등 총수일가가 일본 롯데를 중심으로 지배하는 총 37개 해외계열사 중 유독 로베스트만 스위스에 근거지를 둬 비자금 조성 등 은밀한 거래에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지목된다.
특히 로베스트는 2010년 5월 보유 중이던 롯데물산 주식 408만5850주를 호텔롯데·롯데쇼핑·롯데미도파·롯데역사에 1592억원을 받고 처분했다. 주당 매각가격은 3만8982원으로 반년전 롯데물산의 주식가치(약 1만6500원)보다 2배 이상 비싼 값을 받고 주식을 팔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로베스트를 통해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갖고 자금의 용처 등을 수사할 방침이다. 당시 롯데 계열사들이 로베스트에 얹어준 웃돈은 920억원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위스등록청(SOGC)에 올라있는 로베스트의 법인청산 관련 문서. |
하지만 로베스트가 청산 절차를 진행 중이라 검찰이 혐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로베스트는 지난달 10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회사청산 결정을 내렸다. 내달 1일까지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하면 회사를 소멸시킬 수 있다. 현재 로베스트의 청산업무는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법률사무소 트레코AG(Treuco AG)가 맡아 진행 중이다.
김대희 법무법인강남 변호사는 "서류상 회사의 청산작업은 큰 문제가 없으면 2~3개월이면 끝난다"며 "청산 뒤에는 대부분의 내부자료를 보관할 의무조차 사라져 검찰이 자료를 넘겨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베스트에는 실질소유주인 신 총괄회장뿐 아니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장남인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도 직간접적으로 관련돼있을 것으로 재계는 추정하고 있다.
신 회장은 로베스트와 롯데 계열사의 지분거래 당시인 2010년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정책본부장을 맡았고,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초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해임되기 전까지 일본 롯데를 이끌었다.
현재 그룹 경영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양측은 로베스트와 연관성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로베스트는 일본 롯데홀딩스가 관할하는 회사로 의사결정도 일본에서 주로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 전 부회장측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의 재산은 모두 차남인 신 회장측이 관리했다"며 "신 전 부회장이 로베스트에 간여할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