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약·바이오 업계의 화두는 단연 '연구개발(R&D)'이었습니다. 주요 기업들이 기존 영업 마케팅 위주의 경영 전략에서 벗어나 R&D 투자에 집중해 눈에 띄는 성과를 내면서입니다. 다만 실적은 다소 주춤했는데요. 너도나도 R&D 비용을 늘리다 보니 실적은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 혹독한 시기를 거치면서 '옥석가리기'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R&D를 둘러싼 환경적인 변화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연구개발비를 회계적으로 자산화하는 방식을 두고 금융당국과 갈등을 겪어왔는데요. 금융감독원이 얼마 전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관련 감독지침'을 내놓으면서 불확실성이 해소됐습니다. 내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더 좋은 성과가 기대되고 있습니다.
◇ 유한양행 '잭팟'…주목받은 오픈이노베이션
지난달 유한양행이 다국적 제약사 얀센에 폐암 신약 후보물질인 레이저티닙 기술을 수출하면서 제약·바이오 업계가 들썩였습니다. 계약 총액이 최대 1조 4000억원 수준으로 국제 제약 사상 두 번째 규모였기 때문입니다. 이 기술의 현재 가치를 가늠하는 초기 계약금만 560억원이고, 아직 임상 3상이라는 넘어야 할 산이 남았지만 '잭팟'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특히 유한양행의 오픈이노베이션이 주목받았습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개방형 혁신'으로,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조달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유한양행은 바이오벤처인 오스코텍으로부터 지난 2015년 당시 계약금 10억원을 주고 바이오티닙을 들여왔습니다. 이 기술이 3년 만에 1조 4000억원이 된 셈입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아무래도 글로벌 기업과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 기술력은 물론 자금력에서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입니다. 동국제약이나 GC녹십자, 동아에스티 등 다른 제약사들 역시 이런 방식의 R&D 투자를 확대하거나 추진하고 있습니다.
◇ R&D 투자 쑥쑥…영업 실적은 주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국내 상장 제약사의 연구개발비는 9240억원 규모였습니다. 이후 5년 만인 지난 2016년엔 1조 5657억원 수준으로 늘어나면서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R&D에 연간 1000억원 이상 투자하는 경우는 2011년까지만 해도 셀트리온 뿐이었지만 올해는 유한양행과 GS녹십자, 셀트리온,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 5개사로 늘었습니다.
물론 R&D 비용을 늘린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혹독한 시기를 견디고 있습니다. 올해 3분기 실적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국내 빅5 제약사인 유한양행과 GC녹십자, 한미약품, 종근당, 대웅제약 등의 실적이 일제히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유한양행은 3분기 영업이익이 44억원에 그치면서 지난해 3분기보다 77.3% 줄었고, GC녹십자 역시 280억원으로 33.3% 감소했습니다. 한미약품도 지난해 3분기 186억원에서 올해에는 123억원으로 줄었습니다. 제약사들은 한목소리로 'R&D 비용' 증가 탓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런 분위기는 올해 4분기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 한미 기술 수출 이후 공백기 끝나나
시장에선 당장 실적은 좋지 않지만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올해를 기점으로 내년에도 R&D에 따른 열매를 맺는 사례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제약업계에선 지난 2015년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 이후 공백기가 있었는데요. 당시 많은 제약사들이 R&D 투자를 경쟁적으로 늘렸던 덕분에 올해 들어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올해만 해도 지난 1월 동아에스티가 당뇨병성신경증 치료제를 수출했고, SK케미칼도 세포배양 백신생산 기술을 수출하면서 주목받았습니다. 이후 유한양행의 '잭팟'으로 정점을 찍었죠.
이달미 SK증권 연구원은 "내년에도 대웅제약과 SK바이오팜, 한미약품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가 예상되고, SK케미칼과 바이로메드, 신라젠 등의 미국 임상 결과 역시 긍정적으로 전망된다"며 "2019년은 무엇보다 R&D 이벤트가 다양한 한 해가 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 회계 불확실성도 해소…신산업 발돋움 기대
R&D와 관련해 제도적인 호재도 있었습니다. 금융당국이 제약·바이오 회계처리 관련 불확실성에 따른 논란이 커지자 이를 해소하고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9월 감독지침을 마련한 건데요.
금감원은 앞으로 신약의 경우 임상 3상 단계부터 연구개발비를 자산화할 수 있도록 하고, 바이오시밀러의 경우에는 임상 1상부터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금융위원회의 증권선물위원회 역시 이런 감독지침을 반영해 최근 금감원의 회계감리를 받은 제약·바이오 업체들에 대해 계도 조치만 하기로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최근 삼성바이오와 셀트레온헬스케어의 분식회계 논란이 불거지긴 했지만 이번 결정으로 '회계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꾸준한 R&D 투자와 이를 통한 성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장 영업 지표가 하락해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도 있겠지만 이를 통해 제약·바이오 산업이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 신산업으로 발돋움하길 기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