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위협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세계 각국과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의 지속적인 확산으로 상황이 급박해지다 보니 세계 보건당국도 임상절차 및 심사를 간소화하면서 치료제와 백신 연구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다.
글로벌제약사인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하다 중단한 '렘데시비르'는 미국에 이어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사용승인을 받았고 스테로이드제 '덱사메타손'은 영국에서 유력한 코로나19 치료제로 떠올랐다. '긴급사용승인'은 감염병과 같은 위기 상황에 치료제가 없거나 공급이 부족할 경우 치료효과가 유력한 후보물질의 임상시험을 생략하고 긴급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백신은 치료제보다는 더디지만 일반 백신 보다 빠른 속도로 개발이 진행 중이다.
초기에는 급속도로 퍼지는 코로나19를 잡기 위해 순수하게 백신과 치료제 개발의 성공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이제는 이르면 내년 중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이 예측되면서 지식재산권에 대한 논쟁이 화두로 떠올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총회를 열고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공공재처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에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의 특허권이나 임상시험 자료 등을 한 업체가 독점하지 않고 WHO에 맡기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날 WHO 194개 회원국 중 100여개 나라가 서명했다.
중국은 백신 개발시 공공재로 공유하겠다고 못을 박았고 우리나라 역시 전 세계에 공평하게 보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결의안에 서명하면서도 특허권은 보호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최근에는 WHO를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WHO가 미국이 제시한 개혁안을 거부하고 중국 편향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대부분 국가들이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공중보건 위기상황에 빠진 만큼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공공재로 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지만 이는 일방적으로 결정짓기 어려운 문제다.
최초로 백신을 개발한 기업이 특허권을 내세워 시장을 독점할 경우 고가의 가격 책정과 공급 부족, 불공평한 분배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백신과 치료제 조달이 어려울 수 있게 된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많은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 개발한 기술력을 공유해야 한다는 게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인식을 의식해 코로나19 치료에 사용되는 물질들의 독점 권리를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앞서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렘데시비르'의 희귀의약품 지정 신청을 했다가 비난 여론에 자진 취하한 바 있다.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면 7년간 독점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국내에서 중증 코로나19 환자들에게 투여되고 있는 칼레트라의 원개발사인 애브비도 칼레트라의 특허권을 포기했다.
그러나 공들여 이뤄낸 결과물의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면 다수 기업들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실제로 국제제약협회연맹(IFPMA)은 "지식재산권이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의 속도를 높였다"고 반박했다. 다국적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 파스칼 소리오 최고경영자도 "지식재산권이 보호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장려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서는 특허권에 대한 가치 보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공공재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제도로는 국제법적 근거가 마련된 '강제실시권'이 있다. 이는 지적재산권자의 허락 없이 강제로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무조건적인 강제실시권 발동은 세계 제약업계의 반발을 살 수 있다.
기업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특허권은 보호해주면서 WHO와 같은 국제기관 차원에서 특허권에 대한 적정 가격을 협의하고 원활한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기업들은 공중보건을 위해 수익에 대한 과욕은 내려놓고 국제 공조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 발 양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