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간편식(HMR) 시장을 둘러싸고 유통업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그동안 유통업에는 진출하지 않았던 삼성그룹도 HMR 시장참전을 선언했다. 닭고기 전문 업체인 하림은 HMR 시장 진출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업계 1위 CJ제일제당은 프리미엄 HMR 제품을 내놓으며 굳히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다.
여러 업체들이 HMR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어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조 6000억 원이었던 HMR 시장 규모는 오는 2022년에는 5조 원 이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시장의 성장속도는 더 빨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식품업계는 시장 규모가 커지더라도 초기의 점유율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초반에 승기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 삼성, HMR 내세워 식품업 진출
시장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올해 유통업계가 긴장할 만한 소식이 들렸다. 삼성그룹이 HMR시장에 진출한다는 내용이다. 삼성은 과거 홈플러스 설립 초기 지분참여 이후 유통업에서는 손을 뗐다. 삼성은 1990년대 초반 계열분리를 통해 CJ와 신세계가 독립해 나간 뒤 유통업에는 관여하지 않아왔다. 삼성웰스토리를 통해 급식업계에서는 일부 경쟁구도가 있었지만 삼성그룹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 본격적인 점유율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삼성웰스토리가 HMR사업에 시동을 걸고 가정간편식 전문 브랜드인 ‘라라밀스(LaLameals)’를 공식 론칭했다. 급식 사업에서 축적한 음식의 영양설계 노하우와 식사 데이터, 식단기획, 메뉴개발 등의 역량을 접목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삼성웰스토리는 라라밀스를 오는 2025년까지 연매출 연매출 2000억 원 규모의 브랜드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CJ제일제당의 HMR 연매출 규모가 약 8000억 원 수준이라는 점에서 다소 소박한 목표라는 평가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만은 없는 분위기다. 특히 삼성그룹 계열사를 중심으로 급식업계 매출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하루에 삼성웰스토리가 급식으로 제공하는 식사는 약 100만 식에 달한다. 제품의 품질과 생산에 있어 궤도에 올라있다. 유통채널을 제대로 확보하고 '삼성' 브랜드를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질 경우 HMR 시장의 다크호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웰스토리는 HMR 뿐만 아니라 간단한 조리과정이 필요한 밀키트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HMR은 소비층이 일반 소비자에 국한되지만 밀키트는 일반 식당이나 프랜차이즈 업체와 OEM·ODM 방식의 시장개척이 가능하다. 삼성웰스트토리는 국내 밀키트 점유율 1위인 프레시지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관련시장 개척에 나설 예정이다.
◇ 기존업체 경쟁도 치열…관련 투자 집중
기존 식품업체의 HMR 시장 도전도 계속되고 있다. 하림이 대표적이다. 육계가공과 유통을 전문으로 하던 하림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종합식품기업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현재 전북 익산에 '하림 푸드 콤플렉스'를 조성 중이다. 여기에 HMR전문 생산라인이 들어선다. 이미 제품생산에 필요한 원재료 납품계약 등도 진행됐다. 빠르면 내년초 첫 제품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림의 HMR 제품 콘셉트는 '부재료를 없앤 순수한 맛'이다. 최근 하림은 특허청에 '하림 순', '하림 순수한', '하림 순라면' 등 식품 관련 상표를 대거 출원했다.
즉석죽 시장을 석권했던 동원F&B는 지난 5월 '양반' 브랜드로 '국탕찌개' 제품 14종을 출시하며 1위 CJ제일제당을 조준하고 있다. 양반 국탕찌개의 특징은 조리시간을 단축시켜 재료의 맛을 살렸다는 점이다. 일반 HMR 라인에 이어 지난 10월에는 프리미엄 HMR 브랜드 '수라'도 론칭했다. 앞서 동원F&B는 HMR 생산을 위해 동원F&B 광주공장에 400억 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진행한 바 있다.
이 밖에 롯데푸드와 오뚜기, 대상 등 기존 HMR 업체들도 올해 관련 투자를 단행하며 HMR 시장 규모 확대에 대비하고 있다. 이에 업계 1위 CJ제일제당은 굳히기에 나섰다. 최근 CJ제일제당은 프리미엄 HMR 브랜드 '더비비고'를 론칭하고 국물요리 4종, 덮밥소스 4종, 죽 4종 등 신제품 12종을 출시했다. 특징은 저염이다. 기존 제품 보다 나트륨 함량을 25% 가량 낮췄다. 가성비보다는 품질에 집중했다. 가격은 기존 제품보다 높다. 하지만 진짜 집밥을 대체할만한 품질을 담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처럼 HMR에 대한 투자와 신제품 출시가 이어지면서 내년을 기점으로 HMR 시장의 판도가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HMR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업체들이 집중적으로 투자해 새로운 제품이 계속 쏟아내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식품업계에서 가장 큰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시장이 HMR"이라며 "다양한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얼마나 다양한 HMR 제품을 시의적절하게 출시할 수 있느냐가 업체의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